<문경근 칼럼>'요즘 뒷전으로 밀린 토끼풀, 초목의 귀천도 세월 따라 변합니다'

들판의 토끼풀이 한가로움을 더한다.
우리 주변에는 같은 식물인데도 다른 이름을 가진 것들이 종종 눈에 띱니다. 토끼풀과 클로버도 그 중 하나입니다. 토끼풀이라는 이름은 소박하고 정감이 있으며, 클로버는 세련되고 서구적인 느낌을 줍니다. 특히 토끼풀을 보면 예쁘고 착하게만 보이는 토끼가 먼저 연상됩니다.

산책길에 작은 잎들을 서로 부비고 있는 토끼풀 무더기를 들여다보며, 그 안에서 어린 시절 애지중지했던 토끼를 떠올렸습니다. 

국민학교 시절, 나는 집에서 토끼 네댓 마리를 기른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빈 사과궤짝을 요지조리 맞추어 만든 토끼집은 허름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놈들은 마냥 좋은 듯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내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 무렵 내 또래들은 누구나 집에서 토끼 몇 마리쯤 기르고 있었습니다. 길가에 지천으로 깔려 있는 토끼풀이 그놈들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하굣길에는 신주머니 속에 토끼풀을 꾸역꾸역 집어넣어, 빵빵하게 채우는 일이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였습니다.

토끼풀은 이름처럼 토끼가 가장 좋아하는 먹을거리이자, 때로는 아이들의 노리개가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토끼풀꽃은 우리들의 여린 손을 거치면 반지나 시계로 변신하여, 하굣길의 심심풀이기 되어 주기도 했습니다. 우리들은 그게 무슨 귀한 선물이라도 되는 듯, 서로 끼워주며 깔깔댔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농촌에서도 토끼를 기르는 아이들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토끼풀이라는 정겨운 이름도 갈수록 뜸하게 불리어지더니, 이젠 클로버라는 멋스런 이름표로 갈아 달았습니다. 그런 중에도 네잎클로버는 행운을 가져다준다 하여 귀여움을 받는가 하면, 그걸 찾는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애꿎은 보통 클로버들이 밟히고 무시당하기도 합니다. 세잎클로버의 꽃말이 행복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행운을 쫓기 위해 '작은 행복 조각들'이 구박을 당하는 꼴입니다. 

토끼풀은 잔디밭에서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 일쑤입니다. 요즘 아주 귀한 대접을 받는 잔디에 지장을 주는 잡초로 취급되어, 뽑히는 것은 물론 심하면 농약 세례를 받기도 합니다. 착하고 순한 친구처럼 여겼던 토끼가 아이들 곁에서 멀어지면서, 토끼풀도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리게 된 것 같습니다.

어쨌든 농촌 아이들의 친구였던 토끼를 살찌우며, 귀한 대접을 받던 토끼풀의 처지가 요즘 말이 아닙니다. 토끼와 아이들로부터 총애를 받았던 화려한 시절을 떠올리면, 요즘 토끼풀의 처지가 애틋하기조차 합니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면서 인심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거니 여기지만, 사물이나 초목의 귀천도 세월 따라 변하는 것 같아 씁쓸함을 자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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