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근 칼럼> 자연의 절묘한 배턴터치

▲ 정읍천은 삶에 지친 시민들의 안식처다.
밖으로 몇 걸음만 나가면 확 트인 산책길과 아름다운 산천을 만날 수 있는 곳에 살고 있는 것도 나에겐 행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산책길을 따라 걸으면 손에 닿을 듯한 냇물이 잘잘거리며 흘러가고, 길 양편에 펼쳐진 논은 물을 가득 담은 채 모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건너편에는 녹음이 짙어가는 산줄기가 마을을 품에 안은 채 펼쳐져 있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온통 연둣빛으로 치장하고 여린 손을 흔들며 쫑알거리더니, 이젠 완연한 녹음을 자랑하며 계절의 변화를 일러주고 있습니다.

요 며칠 동안 초여름 비가 내린 끝인지라 한결 상큼해진 공기가 코끝을 간질입니다. 시절 만난 아카시아 꽃 무리가 달콤한 향기를 풍기며 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아카시아 꽃이 지고나면 밤나무 꽃이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벌들은 걱정이 없는 듯 여유롭습니다. 그들은 자연의 절묘한 배턴터치와 빈틈없는 인수인계의 시점을 뻔히 알고 있나 봅니다. 모두가 자연의 일원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산책로 가에 자리 잡은 금계국도 노릇노릇한 봉오리들을 준비한 채, 피울 시기만을 기다리며 워밍업 중입니다. 길을 되돌아 천변의 둔치에 이르니, 물길의 가장자리를 따라 꽃창포가 만발했습니다. 마치 군무를 마친 노란 나비 떼들이 잠시 휴식을 즐기는 듯합니다. 꽃창포가 시들할 즈음에 그 배턴을 받아 금계국이 꽃망울을 터뜨릴 터이니, 이것도 오월의 끝자락을 보내는 정읍천변의 자연적 순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근년 들어 계절의 한계가 모호해지고 기상 변화가 극심하다보니, 계절의 정체성조차 아리송하다며 걱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봄인 듯하면 갑자기 추위가 오기도 하고, 이젠 어쩔 수 없이 봄이겠거니 하면 금세 여름이 오기도 합니다. 요즘의 계절은 때로는 뒷걸음질을 치기도 하고 때로는 과속하기도 합니다. 예전의 잣대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게 요즘의 계절 바뀜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연의 큰 흐름은 여전히 순리를 거역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순리에 역행하는 것은 자연의 가르침에 대한 사람들의 외면입니다. 요즘 날씨가 통 종잡을 수 없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들은 날씨를 향해 자신을 탓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지구온난화나 난개발에 따른 폐해의 원천에는 인간의 과욕이 자리잡고 있다는 자탄의 소리도 높습니다. 이런 중에도 때맞춰서 갈 것은 가게 하고, 올 것은 오게 하는 것이 자연이라는 거대한 질서인 것 같습니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 스승이 있는데, 그 첫째는 대자연이다.' 루소의 말이 새삼 마음에 와 닿는 요즘입니다. 더 늦기 전에 자연의 순리를 깨닫고, 자연에서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저작권자 © 새백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