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근 칼럼> 고고지성(呱呱之聲)은 희망의 시동(始動)

 막내딸이 진통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은 아내가 초조하고 불안함으로 안절부절 못합니다.
서둘러 딸이 사는 익산에 당도하니, 이미 가벼운 진통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딸은 엄마의 방문에 다소 마음이 놓이는 듯 했으나, 간헐적인 진통이 올 때마다 몸을 뒤척입니다. 밤이 되면서 진통은 그 횟수와 강도가 더해가는 것 같습니다.
딸은 간간이 신음 소리를 낼 뿐 그 고통을 의젓하게 감내하고 있습니다.

아내도 이 딸을 낳으면서 저런 진통을 겪었을 것이고, 그렇게 태어난 딸이 지금 같은 일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며, 딸의 신음 소리를 잠결에 간간이 들으면서도 아버지로서는 속수무책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나가보니 병원에 갈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딸 내외의 지친 모습을 보니, 밤 내내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힘겨워 하는 모습이 안쓰럽지만, 잘 참아준 딸이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기도 합니다.

병원에 간지 세 시간 만에 딸은 드디어 예쁜 딸을 낳았습니다.
진통에 부대끼고 산고를 참아내며 성공적인 출산을 마친 딸의 모습은 평온하고 한결 어른스러웠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아내가 아기 넷을 낳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곁에 있지 못했습니다.
그때마다 낮엔 근무, 밤엔 숙직이라는 이유를 붙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심한 핑계거리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통 큰 남편이라며 두고두고 핀잔을 들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딸을 통해 아내가 겪었을 산고를 떠올리니, 그때마다 자리를 비웠던 일이 다시 미안한 감정으로 밀려옵니다.
사실 딸의 출산을 아내와 같이 지켜본 것도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고자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비록 산부인과병원이기는 했지만, 덤으로 요즘 듣기 힘들다던 아기들 울음소리도 실컷 들었습니다.

아기들의 첫 울음소리는 세상과 처음 만나는 소리이자, 삶의 시동(始動)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무한한 잠재력과 생명의 고귀함을 절감합니다.
요즘 낮아지는 출산율이 국가적인 큰 고민거리로 등장했으나, 보육과 교육 등의 현실적인 문제가 여전히 높은 장벽으로 남아 있는 듯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고고지성(呱呱之聲)을 울리며 이 세상에 나온 귀한 아기들과 당당하게 출산을 선택한 엄마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것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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