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근칼럼>'땅은 그 힘으로 풀을 돋게 하고, 꽃을 피게 합니다'

봄이 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은 봄의 신호를 찾아 이곳 저곳을 기웃거립니다.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면 봄빛이 스며들고 있다며 반가워합니다.
돋아나는 새싹이나 앙증맞게 맺힌 꽃망울을 들여다보면서, 그 안에서 봄을 만났다며 반색을 하기도 합니다. 움츠림에서 벗어난 아이들의 조잘거리는 소리에서도 봄을 알아차립니다.

꽃집에서는 몇 걸음 먼저 핀 봄꽃들이 예쁜 자태를 뽐내며, 서둘러 집안에 봄을 들이려는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작은 철쭉 화분을 보듬고 집에 들어온 가장은, 봄을 사 왔다며 가족들 앞에서 폼을 재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진정한 봄 마중은 밖으로 나가야 제격입니다. 작은 칼과 비닐봉지 하나만 챙겨들고 나가면 밭둑에 내려앉은 봄을 집안으로 들일 수 있습니다. 지천으로 깔려있는 쑥은 화려하지도 돋보이지도 않지만, 친근하고 수수한 봄의 전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식탁에 올린 쑥국을 마주하면 그 맛과 향이 온몸을 봄으로 적십니다. 가장 좋은 먹을거리는 제 땅에서 나는 제철 음식이 제격이라 합니다. 이른 봄에 입맛을 돋우는 음식 중 쑥국을 으뜸으로 여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봄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섭니다.

나는 산책길에 아주 가까운 곳에서 봄을 만났습니다.
봄이 미리부터 와 있는 곳은 뜻밖에도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돋아나는 새싹처럼 풋풋하지도 않습니다. 꽃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색깔도 향기도 없습니다. 좀처럼 거들떠보지 않았던 그것은 바로 발밑의 땅이었습니다.

발밑에서 느껴지는 생기 있는 촉감에 그곳을 유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흙은 마치 깨어있는 듯 했으며, 그 모습이 며칠 전의 그것과는 완연히 달랐습니다. 푸석거리거나 질척거림도 없이 생명력조차 느껴집니다. 겨우내 숨을 죽이고 있던 땅이 거대한 호흡을 시작한 듯 보입니다.

봄은 풀이나 나무를 찾기에 앞서 몇 걸음 먼저 땅을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땅은 힘을 비축하며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땅은 이제 그 힘으로 풀을 돋게 하고, 꽃과 잎을 피게 할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처럼…….

봄의 신호는 먼 곳도 높은 곳도 아닌,
가장 가깝고 낮은 곳으로 먼저 오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들 발 밑의 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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