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근 칼럼>할아버지의 육아일기- "작은 아기 하나로 집안에 생기가 돌지요"

나이를 먹다보면 자식들은 하나둘 결혼하여 살림을 차리게 되고, 그들도 자식을 낳아 부모에게 손자나 손녀를 안겨주는 게 사람 사는 순리입니다.
몇 해 전만 해도 친구나 선배가 손자 이야기를 하면 남의 일이려니 생각했었습니다.

▲ 문경근교장선생님
그런데 우리 부부도 외손자를 맡아 기르게 되었으니, 할아버지가 된 게 실감이 납니다. 
외손자를 기르면서부터 집안에서는 실로 오랜만에 다시 아기 소리가 들리게 되었습니다.
막내를 끝으로 아기 기른 지가 2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아내의 아기 다루는 정성과 솜씨는 예전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때맞춰 우유를 먹이고 잠을 재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상황에 따라 기분을 맞춰주는 솜씨 또한 변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도와준다고 나서지만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나의 아기 돌보기는 아내에 비하면 어설프기 짝이 없습니다. 

나는 퇴근 후나 휴일에 짬을 내어 주로 외손자의 기분을 맞춰주는 일을 거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예전의 방법에만 의존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름대로 갖은 아이디어를 다 짜냈습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내가 정한 아기 돌보기의 기본 방향은‘외손자 눈높이 맞추기’입니다.
눈높이가 다르면 소통에 문제가 생기고, 소통에 문제가 생기면 아기는 나에게서 눈을 돌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말 높이를 외손자에게 맞추었습니다. 말투는 아기처럼 하되 가능한 한 웃는 얼굴을 지었으며, 행동은 더없이 유치하게 하고 필요할 때는 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외손자를 데리고 외출하는 날은 어김없이 카메라를 챙겨 매 순간의 요모조모를 포착하여 카메라에 담아두었습니다. 밖에 나가면 지치지도 않는지, 방방 뛰노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절로 활기가 솟았습니다. 방 안에서도 노는 모습을 비롯하여 밥 먹는 모습, 잠자는 모습, 웃는 모습, 심지어는 우는 모습까지도 사진으로 찍어 두었습니다. 

이 사진들을 정리하여 인터넷 미니홈피에 올려두고 우리 가족들끼리 가끔 들여다보기도 하지만, 수원에 사는 딸 내외가 아들의 달라지는 모습을 수시로 접할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시시각각 아기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진으로 볼 수 있으니, 멀리 떨어져 있어도 떨어져 있는 게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기 돌보기에도 최신 정보통신 기술이 사용되다니, 육아 문화도 참 많이 변했음을 실감합니다. 

 아기는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동화에 관심을 갖게 되며, 그림이 있는 동화책을 보며 이야기를 해주면 참 좋아합니다. 소위 내 식의 동화구연은 이야기의 내용을 엄청 부풀려 본디보다 늘이되, 오버액션을 가미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나의 아기 돌보기 수법 중의 하나입니다.
외손자의 표정을 살피며 내용을 재미있게 각색하다보면 진지한 표정으로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간혹 나를 지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인터넷에서 제공하는 동화의 맛을 알았는지, 컴퓨터를 켜면 슬그머니 무릎 위에 앉아 치근대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세월 따라 동화를 들려주는 방법이나 아기들의 기호도 많이 달라졌으니, 아기를 제대로 돌보려면 공부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손자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우리 아이들 어릴 때의 모습이 자주 오버랩 되어 다가서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좀 더 따뜻하고 살갑게 대해주지 못한 것이 많이 후회되어 성장한 자식들과 아내에게 미안함이 많습니다. 

첫돌이 지나고 발걸음을 떼면서부터 2년여 동안 보살피던 외손자가 다섯 살이 되면서 얼마 전에 어미 품으로 회귀했습니다. 기르는 동안 때로는 힘겹기도 했지만, 아기 하나로 집안에 생기가 돌고 사람 사는 맛을 다시 느꼈습니다. 아기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들여다보며 내일의 세상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요즘 농촌 마을에 가면 아기 울음소리 듣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초등학교의 학생수 격감과 황량해 보이는 운동장은 농촌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산율의 저하가 국가적인 현안 문제로 등장하면서 정부에서는 갖은 방책을 내놓지만, 정녕 당사자들은 요지부동인 것 같습니다.
가치관의 변화와 교육비 부담이 그 원인이라지만, 이를 타개할 마땅한 방법이 보이지 않는 것이 또한 엄연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이 세상에 나온 우리 외손자를 포함한 모든 아기들은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든 세상이 날로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명이 계속해서 태어나고 자라야만 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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