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근 칼럼>반추의 길목에서 되돌아보는 자전적 이야기
돋을볕에 달아오른 가을꽃과 해맑은 아이들

▲ 정읍영산초 아이들이 교정에 핀 꽃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다.
지난 여름에 우리학교의 현관 입구에 네모진 화분을 열대여섯 개 마련하여 샐비어 꽃모를 옮겨 심었었습니다.
제철이 되니 이게 요즘 제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촘촘히 매달린 꽃들도 시절 만난 듯 새빨갛게 달아올랐습니다. 

▲ 문경근편집위원(정읍영산초교장)
사무실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면 금방 닿기라도 할 듯 손끝을 간질이며 유혹합니다.
학교를 찾아온 방문객들은 볼 일에 앞서, 샐비어 꽃과 눈을 먼저 맞추며 좋은 기분 모드로 전환한 뒤에야 안으로 들어섭니다. 
한참 자랄 땐 그리 섭섭하지 않을 정도의 손길만 주었는데도, 이처럼 화려한 자태를 오래토록 뽐내는 가을꽃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거름기가 어느 정도 있는 흙이라면, 날마다 물을 호복하게 주면서 들여다보기만 해도 샐비어는 가을 내내 눈부신 꽃으로 화답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돋을볕을 받으며 이슬을 흠뻑 머금은 채로 나를 가장 먼저 맞아준 것은 샐비어 꽃입니다. 
어느 샌가 아이들이 쪼르르 몰려와 귀엽게 인사를 하더니만, 곧장 샐비어 꽃 화분을 빙 둘러쌉니다.
어제 아침에 왔던 아이들이 다른 친구들까지 불러들여 같이 왔는지, 수가 좀 많아진 듯합니다.
아이들이 무언가 특별한 것을 찾은 것 같아, 나도 덩달아 그 틈에 끼어들었습니다.

꽃을 들여다보고, 꽃 하나 살며시 따서 혀끝에 대어보고, 꿀벌의 하는 짓을 유심히 바라보고, 거미줄에 걸린 꿀벌은 어찌 되었나 쳐다보고 …… .
아이들은 이 작은 일들에 그렇게 즐거워 합니다.  
이 아침 아이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샐비어 꽃처럼 티 없이 밝고 예쁩니다. 

부지런한 꿀벌들이 일찍부터 일을 나왔는지 꽃마다 입을 맞추며 분주히 돌아다닙니다.
아이들의 발걸음 소리에 놀라 멈칫거리기도 하지만, 금세 되돌아와 하던 일을 계속합니다.
아이들을 보니 친구삼아 온 것이라, 경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 

언제 쳐놓았는지, 샐비어 꽃대와 현관 천정 사이에 걸려있는 거미줄엔 이슬방울이 아슬아슬하게 맺혀 있습니다.
보일 듯 말 듯 가냘픈 거미줄에 날렵하게 생긴 거미 두 마리가 죽은 듯이 매달려 있습니다.
운 없는 벌 두 마리가 걸려들어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거미와 꿀벌을 번갈아가며 톡톡 건드려 반응을 살펴봅니다. 
“꿀벌이 불쌍해요.”   
“거미가 나빠요.”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드는 걸 보니, 거미보다 꿀벌을 편드는 아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을의 아이들과 샐비어 꽃과 꿀벌은 참 잘 어울리는 친구들 같습니다.
어른들은 소통하려면 요모조모 재면서 한동안 뜸을 들이는 게 보통인데, 하찮은 미물도 친구라 여기면 금세 가까워져 함께 나돌아 다니는 게 아이들입니다. 

작은 것도 허투루 여기지 않고 선뜻 마음을 여는 이 가을의 ‘특별한 어울림’을 보면서, 오늘도 마음속에 기분 좋은 덤을 하나 더 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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