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박정민학생기자/전북 정읍 소성중 3해년

박정민 학생기자

 

이태석 신부님을 처음 알게 된 건 도덕책이었다.
도덕책에선 진,선,미,학으로 나누어 이태석 신부님께서 하신 일들을 조사하게 했다.

조사를 해보니 이태석 신부님은 내가 본 인물 중 정말 진,선,미,학을 다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카톨릭은 신부로써 신앙 생활도 열심히 하시고 신부님은 힘듦을 가지고 있는 남수단에  선함을 나누어 주시고 배우고 싶지만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으시고 음악을 가르치셨다.

인터넷에 이 내용이 나왔을 때 든 생각은 ‘저게 연민이 아니고 사랑이라서 가능한 일 일텐데...’ 였다.
내가 생각한 사랑과 신부님의 사랑이 달라서 였을까 난 신부님의 선행이 사랑으로 느껴졌다.

차가운 방판속에 따듯한 불꽃이 들어오면 서서히 식어간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날카롭고 차갑다.
하지만 이태석 신부님은 외면하지 않고 그 차디찬 사회를 따듯하게 품어줬다.
그런 신부님의 마음이 한 생명을 살리고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셨다.

그 아이들은 커서 또 남을 돕고 도움을 받은 아이는 또 도움을 준다.
그렇게 신부님은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셨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시절과 달리 서로를 외면하고 자신의 이익만 중요시하고 더 차갑고 정 많은 사람이 불리하고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
이 어려운 사회를 살릴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곳엔 정말 많은 아이들이 굶주리고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그곳에선 금은 보화이다.
그 아이들에겐 우리가 삼성전자 이재용이고 만수르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요즘 사회는 나보다 낮은 사람을 보지 않고 높은 사람만 보는 것일까?
왜 높은 사람을 보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자신의 가치를 떨어 뜨리는 것일까?

모든 사람들에게 가치는 매길 수도 없을 만큼 소중하다.
전재산이 100원이라고 할 지언정 자신이에게 있는 재능과 가치는 너무나 아름답다.

하지만 사람들을 이걸 깨닫지 못한다.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난 작은 것에 감사함을 느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태석 신부는 자신의 재능과 가치를 감사히 여기고 다른 사람을 도왔다.
그가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이유인 듯하다.

이태석 신부님이 아니었다면 남수단에 아이들은 음악에 아름다움과 삶을 살아갈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을까?

이태석 신부님 덕분에 세상을 보는 눈과 귀를 선물 받은 그때의 아이들은 아마 세상을 사랑하는 법도 배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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