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M찬양사역자 장경화권사(광주 남문교회) 인터뷰…대표곡 ‘이 땅 주님의’‘인기 상종가’

찬양사역자 장경화
찬양사역자 장경화

“벼랑끝에서 나를 살리신 그 은혜 그 사랑∼(내사랑 예수여)”

CCM찬양사역자 장경화권사(광주 남문교회)의 ‘알곡 같은’ 사역자의 길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녀의 데뷔곡은 ‘이 땅 주님의(이정호 작사, 전용대 작곡)’라는 곡이다.

음반이 발표될 즈음에는 CD수록곡‘세상에 사는 동안’이란 곡이 대표곡이라 생각했지만 앨범 작업 중 코로나가 시작되어 코로나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대표곡을 바꾸게 됐다.

CCM찬양사역자 장경화권사는“’이 땅 주님의 백성들이 삶의 무게로 울부짖네요’라는 찬양이 현재 코로나 펜데믹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과 이 땅의 회복을 기도하는 분들에게 많이 들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CCM찬양사역자 장경화권사와의 일문일답이다.

▲자기 소개를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현재 광주 남문교회 중·고등부 교사와 할렐루야 찬양팀, 전남노회 여전도회 연합회 찬양 인도로 섬기고 있는 장경화권사(58)입니다.

제가 자랄 때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가 유명했는데 제 이름도 경화가 들어가 ‘예능 쪽으로 가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엄마는 그래서 인지 초등 1학년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게 하셨고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하교할 때 혼자 피아노 배우러 가기 싫어 빼먹기도 했는데 그래도 배운 덕분에 조금 특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간절함이 없어 엄마가 원하는 피아노 전공은 하지 않고 부산 여대 응용 미술 전공을 하게 됐습니다.

졸업 후, 미술 학원, 피아노 학원을 결혼해서도 한참 동안 했었습니다.

인테리어 사업가인 (윤종표, 남편 62세, 호남신학대학원 재학 중)과 고등학교 역사 교사인 큰딸, 직장인 둘째 딸, 포항 해병대 복무 중이며 건축공학전공을 하는 아들이 있습니다.

자립한 둘째를 제외하고는 가족 모두 중·고등부 교사로 찬양팀 악기와 싱어, 단장으로 성실히 신앙생활을 잘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찬양사역자 장경화권사가 전북 정읍 화호교회에서 은혜로운 찬양을 부르고 있다.
찬양사역자 장경화권사가 전북 정읍 화호교회에서 은혜로운 찬양을 부르고 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신 계기는?

-저는 2남 1녀 삼남매로 믿음이 좋으신 부모님 밑에서 모태신앙으로 말씀과 믿음으로 참 잘 자랐다 싶습니다.

충청도 분들이셨던 부모님께서 3살 된 저를 데리고 아는 사람이 없는 경남 진해에 소재한 한양화약에 다니시게 되었습니다.

교회 목사님을 먼저 찾으셨답니다.

목사님께서는 교회 사택과 붙은 부엌 달린 상하방을 내어 주셨답니다.

그래서 제가 초등학교 4학년까지 교회 사택에서 살았습니다.

주일이면 오르간이 있는 저희 방은 성가대 연습실이 되어 연습을 하고 저는 성가 대원들이 연습하는 가운데에 배를 쭉 깔고 딴 에는 잘 그린다는 사과나무를 늘 그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아빠가 새벽기도와 예배 때마다 초종, 재종, 종이 없어질 무렵까지 종을 치실 때 종 줄을 같이 잡아 당겼던 어린 추억이 있습니다.

이대 출신의 성악가 여집사님의 찬양도 흉내를 내며 자랐습니다.

사택에 살면서 목사님들이 세 번 정도 바뀌신 것 같은데 다들 좋으시고 늘 말씀 준비하시는 모습과  나도 크면 사모가 되어야지 그랬었습니다.

62세인 남편이 대학원에서 신학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사모의 그릇이 못 되었는지 원하는 사모를 젊어서가 아니라 이제 남편이 신학을 하게 되다니 그래도 참 놀랍습니다.

남편이 신학을 하며, 가정도 남편의 얼굴에 생기가 돕니다.

어떻게 또 사용하시고 주님이 일하실지 기대가 됩니다.

▲찬양 사역자로 데뷔하시게 된 동기와 전용대 목사님과 인연은?

-늘 찬양하며 사는 저에게도 갱년기가 왔었고 갱년기의 증상으로 있다는 모양은 다 겪으며 지난듯 합니다.

그 시기 글도 써보고 찬양과 말씀으로 주님을 더 가까이 했습니다.

찬양을 하며 핸드폰에 녹음도 해보고 성경 낭송도 해보고 하며 이겨냈습니다.

마침 그때 저희 교회가 50주년 희년을 바라보며 건축을 시작하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여러 일들로 성도님들과 목사님이 힘드시겠다는 생각이 들며 좀 힘을 내게 해드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할 때 전용대 목사님 찬양사역 일정 소식을 듣고 이거다 싶었습니다. 광주 부근으로 오시기에 초청이 이루어져 저희 교회에 오셨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때 간절한 마음에 용기를 내어 목사님께 저도 찬양 사역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하시면 되죠!” 하시고 서울로 가셨습니다.

그냥 하신 말씀이 아니셨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 이후로 1집 앨범 작업이 마치기까지 거의 매일 전화로 레슨을 해주셨습니다.

전화기로 여과 없이 제 목소리로 찬양을 부른다는 건 너무 부끄럽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목사님에겐 여러 변명이 통하지 않고 사정을 봐주시는 경우가 없어 어떤 형편이든 멈추고 전화가 오면 길을 가다가도 멈춰서 찬양을 불렀습니다.

야단도 듣고 알게 모르게 참 많이 울었는데 목사님께 배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끝까지 참아냈습니다.

전화기에 ‘전용대’ 이름 석 자가 뜨면 안 받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일부러 안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야 배울 수 있었기에 늦게 또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를 불러주셨으니 저의 모든 부족으로 인한 창피도 내려놓겠습니다.

“사용하여 주세요”였습니다.

찬양사역자 장경화권사의 화호교회 찬양집회 모습이다.
찬양사역자 장경화권사의 화호교회 찬양집회 모습이다.

▲자신의 대표곡과 창작 에피소드는?

-저의 대표곡은 ‘이 땅 주님의(이정호 작사, 전용대 작곡)’라는 곡입니다.

처음에는 ‘세상에 사는 동안’이란 곡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앨범 작업 중 코로나가 시작되어 코로나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대표곡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 땅 주님의 백성들이 삶의 무게로 울부짖네요’라는 찬양이 현재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이 땅의 회복을 기도하는 찬양이기에 많이 들려졌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좋아하시는 성경 말씀은? 가장 좋아하시는 찬송과 CCM곡목은?

-제가 좋아하는 말씀은 저의 자존감을 높여 주었던 스바냐 3:17 말씀입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니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자랄 때 저녁 8시에 꼭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만 해도 어린이 찬송가가 따로 없어서 찬송가 288장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찬송은 너무 딱딱하고 제게는 재미없는 찬송 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이 두 찬송을 좋아하셨습니다.

나이를 먹고 보니 지금의 저도 똑같이 이 두 찬송을 고백하며 감사함으로 부르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마음도 알 것 같았고, 가정 예배를 드려주셨던 부모님이 참 고맙고 귀하게 여겨집니다.

또 ‘영문밖의 길’ CCM을 좋아 했는데 지금은 찬송가로 되었죠.

지금이나 어릴때나 보혈 찬양을 좋아 하네요.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과 이유를 설명해주세요?

-기억에 남는 첫 교회 찬양 사역은 오랜 세월 선교지에 계시다 한국으로 돌아오셔 개척 설립 예배를 드리시는데 피아노가 필요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어려운 교회에 피아노를 기증 받아 교회로 보내시는 최우규 집사님과 연결을 해드리며 인연이 되었던 교회의 특송 이었습니다.

다른 찬양 사역자의 곡을 세 번 불러보고 용감하게 특송을 했는데 속으로 떨렸던지 목소리가 자꾸 기어들어가 전심으로 불렀지만 돌아와 부족한 모습에 참 죄송스럽고 얼굴 화끈거리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처음 만나는 교회와 성도님들은 만나 뵙는다는 설렘에 가슴 뛰며 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아직 배우며 달려갈 길이 멀지만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가 기대되고 무엇보다 주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며 따라가는 행복이 크고도 커서 세상의 어떤 기쁨과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의 꿈과 계획은?

-앞으로의 계획은 없습니다. 계획 없는 것이 계획입니다.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꿈은 나이만큼 커지고 더 생겨납니다.

강하지도 지혜롭지도 못한 저이지만 자신보다 하늘의 뜻을 따라 사는 꿈, 농촌 목회 현장을 협력하고 세우는 일에 쓰임 받으며 찬양 사역자로 부르심에 전심으로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 인생 후반의 저의 꿈입니다.

멋진 가을! 주님 부르심의 상을 위해 끝까지 함께 완주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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