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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제 지킴이 이용찬기자 문화재청 유공자 표창 금자탑’<뉴스엔피플-문화재 지킴이 이용찬>‘ '조선왕조실록' 지켜낸 정읍의 선비 안의와 손홍록의 업적 추적 공로’
문화재청‧ (사)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 주최 '문화재지킴이 날' 유공자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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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29  11:2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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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읍 영모제에서 살고 있는 이용찬기자(브레이크 뉴스 전북취재본부)가 문화재청과 (사)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가 주최한 '문화재지킴이 날'에 유공자 표창을 수여 받았다.
문화재청은 21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수정전 앞에서 (사)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와 공동으로 '문화재지킴이 날' 전야제 행사를 가졌다.

이날 전야제 기념식에서 김종진 문화재청장이 정읍출신 이용찬 기자(브레이크뉴스 전북취재본부 문화부장)를 비롯 문화재지킴이 활동 유공자에 대한 표창장을 수여했으며 실록 이안(移安) 재현 행사 및 축하공연 등이 화려하게 열렸다.

   
▲ 이용찬기자가 '문화재지킴이 날'에 유공자 표창을 수여 받고 있는 모습이다.
문화재청장 표창장을 수여받은 이용찬 기자는 '문화재지킴이'로 문화재를 스스로 가꾸고 지키며 널리 알리는데 기여한 유공을 인정받아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편 지난달 22일은 전북 정읍의 선비인 안의와 손홍록 등이 전란 중 소실 위기에 빠진 '조선왕조실록' 800여권을 비롯 '고려사‧고려사절요'등 국가 주요 서적을 전주사고에서 빼내 옮긴 날이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성주사고와 충주사고를 비롯 춘추관 및 전주사고 등에 보관돼있던 '조선왕조실록'가운데 3곳에 있던 보관본이 소실됐다.
하지만 '전주사고본'은 무사했으나 이것도 풍전등화의 위기에 직면하자 6월 22일 안의와 손홍록은 실록을 전란의 위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전주사고로 달려갔다.
이들은 전주사고에 보관돼 있던 64괘 짝의 실록을 정읍 내장산 용굴암으로 옮겼고 이후 더 깊은 산속인 은봉암‧비래암 등으로 옮겨가며 1593년 7월 9일까지 무려 380여일 동안 수직하면서 매일의 상황을 ‘수직일기’(守直日記)로도 남겼다.

두 사람은 실록이 익산과 아산‧인천을 거쳐 강화부까지 옮겨질 때도 사재를 털어 동행하면서 실록을 지켜낸 조선의 진정한 '문화재지킴이'자 애국 의사였다.
"문화재지킴이"는 지난 2005년 4월부터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문화재를 가꾸고 지키기 위해 시작된 국민 참여 문화운동이다.

현재 개인과 가족‧학교‧비정부기구 등 자원봉사자 84,000여명이 문화재지킴이로 위촉돼 활동하고 있다.
"문화재지킴이"는 문화재와 문화재 주변 정화 활동‧문화재 관리 사전 점검 및 순찰‧문화재 홍보‧장비 지원‧기부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자료제공 브레이크뉴스>

 
‘늘 세계사 속에서 자료 기근국가라는 오명 쓰는 우리의 역사’
<특별기고-브레이크뉴스전북취재본부 이용찬문화부장>'문화재 지킴이의 날' 선포에 즈음해

지난 22일 전국에서 활동하는 10만 문화재지킴이들이 춘추관의 옛 터인 경복궁 수정전 일원에서 공식적인 "문화재지킴이의 날" 선포식이 있었다.

   
▲ 이용찬기자<브레이크 뉴스 전북취재본부 문화부장>
이 땅의 유서 깊은 역사와 문화유산을 지키려던 노력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거기에는 아직도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를 얻지 못하고 있는 후백제 부흥운동이나 고구려의 부흥운동과 같은 무형적 자산들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우리의 역사는 늘 세계사 속에서 자료 기근국가라는 오명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런 서구와 중국, 일본 등의 국제적 시선은 1997년 10월 1일, 유네스코가 우리의 역사서 '조선왕조실록'을 세계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며 이전까지의 인식에서 세계의 시선에 경악과 함께 새로운 경외의 대상으로 우리를 바라보게 했던 역사적 계기를 마련한바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정부가 1973년 12월 31일 국보 제151-1호와 제151-3호로 지정, 관리해 오던 것이다.

6월 22일(음력)은 시대를 뛰어넘어 조선시대 문화재지킴이들이 국난의 상황에서 우리의 공식적인 국가기록문화유산을 자비로 지켜냈던 역사적인 날이다.
따라서 6월 22일을 전국의 우리 문화재지킴이들이 '문화재지킴이의 날'로 선포하고 이날을 기념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너무나 가슴 뭉클한 감회에 젖게 한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적인 쾌거는 민초들의 공적을 관료들의 공적으로 찬탈했던 혼돈의 역사 속에서 정읍 선비들의 노력도 한낱 부질없는 영웅담에 지나지 않았고, 그 위대했던 역사 또한 423년이 지난 2015년 6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바람직한 역사로 밝혀진바 있다.

'조선왕조실록'이 내장산으로 옮겨져 보관되었던 '용굴암‧은적암(은봉암)‧비래암'의 위치가 전라북도 기념물로 공식 천명된 시기는 2015년 6월 2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이 3년 후 우리들이 가꾸고 지켜야 할 '문화재지킴이의 날'로 공식 선포되는 것이다.

당시, 실록을 지켜냈던 정읍의 선비 안의(安義 1529~1596)와 손홍록(孫弘祿 1537~1610)은 스승 일재(一齋) 이항(李恒 1499~1576)의 유지를 받들어 다른 제자들과 함께 국난의 상황에 이르러 내부와 외부에서 국난타계에 나섰고 거의가 죽음을 면치 못했다.
때문에 이들의 역사는 시대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있었다.

내부에서 실록이 이안되던 시기 외부에서는 건재 김천일과 동래부사 송상현‧오봉 김제민 등의 일재(一齋) 이항(李恒)의 제자들이 전쟁의 최선봉에 나서서 왜세에 항전했고, 전쟁에 나설 수 없었던 노구의 안의와 손홍록은 실록과 어진의 피난에 힘썼다.

그 결과, 6월 22일 '조선왕조실록'이 내장산 용굴암으로 1차 옮겨졌고, 7월 1일 실록에 이어 조선의 태조 어진이 역시 내장산 용굴로 옮겨지며 비로소 모두가 안전해 질 수 있었다.
우리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모든 국난의 상황에서 구국의 힘이 모아져 국난타계의 상황을 만들었던 것은 임금도, 세도 정치가들도 아니었다.
그것은 풀뿌리처럼 모진 세상을 헤쳐 나갔던 우리 문화재지킴이들과 같은 힘없는 민초들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흩어져 활동하는 10만 문화재지킴이들의 정신과 소명의식이 이렇듯 전국 각처에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지켜내는 데 모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오는 22일 "문화재지킴이의 날" 선포식이 갖는 의미는 남다른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역할이 과연 무엇인지를 새삼 되짚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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