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에 만난 사람 여섯 번째-‘소풍’ 김 준사장>‘천직 은행원으로 전반전 인생 마감하고 새로운 항해를 시작합니다’
정읍시 소풍 모텔 김 준사장의 나이테 같은 인생 드라마 ‘훈훈’

▲ 소풍 모텔 김 준사장이 위생관리 최우수 숙박업소로 지정된 팻말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늘도 한 시대를 ‘자식’으로 ‘아버지’로 살아온 분의 인생을 기록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가난한 시절 장남이라는 이름으로 5남매 동생들을 자식처럼 키우며 회한의 세월을 보냈다.

인생 후반전을 예향 정읍에서 보내고 있는 소풍 모텔 김 준사장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소설의 무대는 전북 순창군 복흥과 정읍 그리고 전주와 서울이다.
정읍과의 인연은 순창군 복흥면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정읍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내장산 갈재를 넘어 온 어린 시절이었다.

▲ 김 준사장의 새로운 꿈이 영글어가는 소풍 모텔 전경
서정주시인의‘국화옆에서’누이 처럼 거울 앞에선 자신의 모습을 보며 파노라마처럼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 하는 김 준사장의 ‘인생열전’속으로 들어가 보자.

김 준사장의 고향은 전북 순창군 복흥면이다.
누구나 그런 것처럼 어린시절은 가난과의 사투였다.
아버님을 일찍 여의고 6남매의 장남으로 시작한 그의 인생은 굴곡의 연속이었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한 가지 약속을 했다.
고학생 시절 배고픔을 알기에 시작한 작은헌신에 대한 스토리는 철저히 비밀에 붙이기로 약속했다.
솔직히 김 사장과의 ‘정유년에 만난 사람’ 기획 인터뷰는 그의 선행이 뉴스의 초점이었기 때문이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약속이니 지켜주기로 했다.

김 사장에게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
가족을 돌보던 아버지의 급작스런 죽음과 순창북중시절 자신의 머리를 잘라 학비를 마련해주던 어머님의 눈물이 가슴 한 켠에 흑백 필름처럼 잔영이 맺혀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김 사장의 동생들은 제때에 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나눔과 베품’을 자신의 ‘인생화두’로 삼고 있는 김 사장은 전주상고를 졸업하고 구 서울은행(현 우리은행 전신)에 입사했다.
은행원이 된 김 사장은 사랑하는 아내의 ‘헌신’과 ‘배려’덕에 동생들의 학비는 물론 자취생활까지 지원하며 ‘가장’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저희도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한 번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제 의견을 따라준 아내가 제 인생의 가장 소중하고 든든한 후견인이자 친구입니다”
김 사장 부부의 땀과 헌신이 열매를 맺어 동생들은 세무공무원과 은행원등 사회의 큰 기둥으로 성장해 보람을 안겨줬다.

▲ 소풍 모텔 김 준사장은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형제자매들을 위한 헌신의 삶을 살아온 주인공이다.
금융권 통폐합과정에서 은행문을 나선 김 사장은 서울에서 벌인 사업이 90년대 국제 개방화시대의 흐름을 타고 성장해 큰 성공을 거뒀다.
평소 학구파로 통하는 김 사장은 ‘고졸 은행원’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늦은 나이에 한국방송통신대학 중어중문과에 진학해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주름진 어머니의 이마에 학사모를 씌워 드리며 큰 효도를 하기도 했다.

이런 인연으로 김 사장의 자녀들도 중국 명문대학에서 수학하고 ‘글로벌 인재’로 성장해 일본과 미국등지에서 살고 있다.
김 사장이 정읍에서 노후를 보내기로 작정한 것은 제일가스 강경원사장과의 인연 때문이다.

매주 주일이면 강 사장과 정읍중앙교회(예장통합)에서 ‘신앙의 동지’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
김 사장 아내도 독실한 신앙인이다.

김 사장이 운영하는 숙박업소가 지난해 10월 정읍시청으로부터 위생관리 최우수등급 업체로 선정되는 ‘호사’를 누렸다.
‘야놀자 좋은숙박’‘여기어때 호텔같은 모텔’로 지정된 소풍은 업소 이름이 참 시적이다.
천상병 시인을 떠올리는 ‘소풍’이다.
우리인생이 어차피 한나절 놀다가는‘소풍’아닌가?

“참 부끄럽습니다. 누구나 가난을 넘어 자신에게 맡겨진 소임과 책무를 하는 것인데…세상이 저에게 준 사명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수줍음이 연신 묻어나는 김 준사장은 분명 이 시대를 지켜내는 ‘희망나눔의 아이콘’이다. <소풍 문의 063-538-3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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