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사진-시인 조재형의 ‘때늦은 서평-아버지-’ /이창석디지털사진작가

▲ 한송이 동백꽃이 세상사람들에게 연지찍고 부끄러운 미소를 드러냈다.<사진제공-디지털사진작가 이창석제공>
‘때늦은 서평’
-아버지-

조재형

어깨 너머는 천인단애보다 깊다
나는 生을 통틀어 열람해 보았던 것인데
주름진 문장은 까마득해

행간의 속내를 다 읽지 못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주석이 없는 한
만년설처럼 아득한 이면을 헤아릴 수 없었던 것
완고하신 하느님이 낡은 책장을 덮을 때까지
끝내 그를 정독하지 못한 것이다
거기 온화로이 존재함으로 나를 온전케 하였느니
읽느니 보다 쬐는 편이 나았던 아버지라는 권장도서
평생 밝혀줄 것 같던 그가 영구히 꺼진 후
서늘해진 내 청춘을 추스르며 알았다
참으로 따사로웠던 그는 한 권의 경전
끝내 완독하지 못하고 하늘에 반납된 미소
오래토록 사라지지 않는 고전의 향기임을

편집자주-조재형 시인의 시 ‘때 늦은 서평’이 푸른사상 출판사에서 선정, 출판하는 ‘2015 오늘의 좋은 시’에 선정됐다.
‘오늘의 좋은 시’는 현대시를 전공한 교수들이 한 해 동안 문예지에 발표된 시 가운데 선정하여 엮어내는 시선집이다. 2002년부터 해마다 발간되어 올해로 14권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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