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행사-서서평 선교사 학술세미나>‘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Not Success, but Serve)’
한일장신대 설립자 서서평 선교사의 ‘한국 사랑과 소외딘 이웃에 대한 헌신’

▲ 지난 17일 정읍중앙교회에서 열린 서서평선교사 학술세미나에서 한일장신대학교 교수들이 발제를 하고 있다.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Not Success, but Serve)’
서서평 선교사는 100년 전인 1912년 조선에 간호선교사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 녀는 독일계 미국인이다.
조선에 스스로 찾아와 예수님처럼 조선과 조선 사람을 사랑했던 선교사다.
소외되고 연약한 조선의 백성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천국에서 만납시다"라는 말을 남기고 하나님나라로 갔다.

▲ 정읍중앙교회 박종식목사
서서평 선교사의 거룩하고 구별된 삶은 재조명하는 그분이 조선에 오신 후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서야 그분의 삶이 조명되고 있다.

정읍중앙교회(담임목사 박종식)는 창립60주년기념을 기념해 서서평선교사 학술세미나를 지난 17일 오전11시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한일장신대학교 임희모, 이종록, 김옥순, 차성환교수가 서서평선교사에 대한 발제를 해 화제가 됐다.

10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서서평 선교사님은 여자의 몸으로 그것도 혼자 1912년에 간호선교사로 조선에 왔다.
그 녀는 22년 동안 조선에서 조선 사람으로 살았다.

조선 사람처럼 먹고 조선 사람처럼 입고 검정 남자 고무신을 신고 살았다.
여자 고무신은 맞는 고무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 사람보다 조선을 더 사랑했고 조선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하면서 살았다.
특히 고아와 과부, 한센씨 병 환자들을 거두었다.
서서평은 14명의 아이들을 입양해서 키웠다.
13명의 딸과 1명의 아들 요셉이었다.

▲ 조선의 성녀(聖女)로 불리우는 서서평선교사는 고아와 과부, 한센씨 병 환자들의 영원한 생명의 친구였다.<사진제공 서서평선교사 연구회>
그렇게 많은 딸을 입양하여 자기 딸로 삼았던 것은 그만큼 그 시대에 불우한 여성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가난해서 종처럼 팔려 다니는 여성, 남편에게 소박맞은 여성, 사창가의 여성 등. 여자는 교육도 시키지 않았던 그 시대를 생각하면 그 시대의 여성들이 얼마나 소외되고 차별을 받았을 것인지 생각할 수 있다.

조선에서 22년 동안 선교사역을 했던 서서평 선교사님은 선교 뿐 아니라 의료 및 사회복지 나아가서 사회운동, 그리고 교육까지 많은 분야에서 엄청난 일을 해냈다.
그녀는 한일장신대학교의 전신인 이일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54년의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하실 때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천국에서 만납시다"였다.

▲ 고 서서평선교사<사진제공 서서평선교사 연구회>
시신까지도 의학의 발전을 위해서 기증하고 떠나갔다.
서서평선교사가 남겨 놓논 것은 담요 반 장, 몇 푼 안 되는 엽전, 그리고 옥수수 가루 몇 홉이 전부였다.
담요가 반장인 까닭은 그 반장도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베풀 수 있는 모든 것을 조선과 조선 사람들을 위해서 모두 주고 천국으로 향했다.

서서평 선교사님의 장례식은 광주 최초로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일본 사람들 뿐만 아니라 광주의 수많은 사람들이 서서평 선교님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어머니, 어머니"를 외치며 슬퍼했다.

서서평 선교사님은 그의 평생을 하나님처럼 살았다.
그분의 삶의 좌우명은 "Not Success, but Serve(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서 살아간다.
"어떻게 하면 인생에 성공할 것인가?
서서평 선교사처럼 성공 보다는 섬김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세상을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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