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상칼럼>아름다운 인생의 주체는 바로 나 자신

   “이것이 무슨 열매죠? 참 예쁘다.”

  집사람이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처음 보는 열매여서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암청색으로 빛나고 있는 열매는 마치 작은 알맹이들이 포도처럼 열려 있었다. 포도 알보다는 아주 작아서 앙증맞았다. 작은 것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색깔이 어찌나 고운지,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열매는 가을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며느리 배꼽이네.”

  이름이 생소하여 집사람은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며느리란 이름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당연 고부간의 갈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에게 있어서 시자만 들어가도 거부 반응을 일으킬 정도로 예민하지 않은가? 그런데 예쁘게 생긴 열매의 이름이 며느리 배꼽이라니,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가을 햇살에 반짝이고 있는 열매가 있는 곳은 깊은 산도 아니다. 황금물결로 넘실거리고 있는 논두렁에서였다. 정성을 들여서 가꾼 농작물은 더욱 더 아니었다. 제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홀로 비바람을 견디면서 자란 잡초였다. 그런 잡초에서 저리도 고운 열매가 열리다니, 자연의 오묘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며느리 배꼽 열매를 바라보면서 감동하게 된다.

  사랑의 이치.

  세상에는 아름다운 일들이 많다. 그 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당연 사랑이다. 사랑만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없다. 사랑의 힘은 무궁무진하다.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바로 사랑이요.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행복에 이르게 해주는 근원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야 말로 세상을 눈부시게 만들어주는 가장 소중한 원천이다.

  사랑은 위대하다. 그러나 사랑은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사랑의 진정한 힘은 살아가면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어진다. 사랑의 이치는 경험과 체험 속에서 터득하게 된다는 말이다. 며느리 배꼽 열매를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온 몸으로 체득하지 못한 사랑은 공허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사람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완벽하다면 사랑은 돋보일 수가 없다. 부족한 것이 없다면 사랑이 필요 없다.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부족하고 그 부족한 것을 메워줄 수 있는 사랑이 우뚝해질 수가 있다. 며느리 배꼽 열매의 고운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다.

  며느리에게 있어서 시어머니는 고통이다. 그러나 고부간의 갈등을 통해서 아파하면서 그 것을 극복하게 되면 미움을 승화시킬 수 있다. 온갖 어려움과 힘든 과정 속에서 시어머니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게 되면 풍요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 며느리 배꼽 열매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결과라 할 수 있다.

  며느리 배꼽 열매를 바라보면서 행복이란 먼 곳에 있지 않고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랑으로 미움을 극복하고 살아가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낼 수 있다. 감내해야 하는 아픔이 크면 클수록 그 것을 이겨내고 난 뒤에 가지게 되는 성취감은 더 커진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주체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다. 열매가 참 곱다.<春城>

 

저작권자 © 새백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