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KBS전주방송총국 함윤호아나운서> ‘모악산 구이 촌놈(?)’ 함윤호아나운서 ‘인기 상종가’
KBS전주방송총국 간판 함윤호아나운서…정읍고에서 ‘토크 콘서트’

▲ KBS전주방송총국 함윤호아나운서가 지난주 정읍고에서 토크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함윤호는 KBS전주방송총국 간판 아나운서다.
‘대표선수’ ‘간판아나운서’등의 표현에 동료들의 시샘도 예상되지만 그는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분명한 스타 아나운서다.

전북도내에서 ‘청소년 맨토’로 활발한 멘토링을 하고 있는 함 아나운서가 정읍고에서 ‘좋아하는 것을 찾아라. 그것이 진짜공부다’라는 주제로 ‘재능기부’ 토크 콘서트를 가졌다.
표류하는 청소년들에게 함 아나운서는 자신이 가장 좋아 하는 일을 찾아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고 소개했다.
스스럼 없이 ‘촌놈’ ‘비주류’임을 고백하는 함윤호아나운서의 ‘토크 콘서트’ 속으로 들어가 보자.

▲ 단란한 함윤호아나운서 가족사진<사진제공/함윤호>
‘꿈과 열정으로 비주류의 아픔을 극복하라’
함윤호아나운서는 자칭 ‘구이촌놈’이다.
자신의 재능을 처음 발견한 것은 중학교 2학년때 였다.
‘머리 박박 긁으며’ 용기를 내 출전한 교내 웅변대회였다.
세상 누구도 예상치 못했지만 그는 우수상을 수상했다.

초등학교시절 미술시간에 준비물을 가져가지 못해 ‘몸으로 떼웠던’ 작은 산촌아이가 자신의 가능성을 처음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그를 눈여겨 보고 미래의 ‘떡잎’을 키워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학창시절 성적도 그리 뛰어 나지는 못했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이 뭔지 모르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불행한 인간형이라고 지적한다.
함 아나운서는 솔직히 늦깎이다.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고시촌에서 막연한(?) 법조인의 길을 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녹녹치 않았다.

법조인의 꿈을 접은 함 아나운서는 자상한 국어교사가 되기 위해 괘도를 수정했지만 ‘함윤호선생님’은 그의 운명이 아니었다.
법조인과 국어교사의 꿈을 접은 그는 먹고살기 위해 주점도 운영해 봤지만 월드컵 응원만 손님들과 함께 멋지게 하고 2년만에 문을 닫았다.

학창시절부터 함 아나운서는 사물을 주제로 즉석 아나운서 멘트를 하는 게 취미였다.
유달리 스포츠를 좋아하던 그는 입사시험 전 야구와 축구 중계로 정평이 날 정도로 담금질을 했다.
“나는 지금 광화문을 지나고 있습니다. 화창하게 맑은 날씨에 시민들의 표정에는 꽃이 피었고 8차선 왕복도로에는 행락객 차량들로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함윤호였습니다”
방송국 입사시험을 보기전에 즐겨하던 아나운서 연습방법이다.

▲ KBS전주방송총국 함윤호아나운서가 지난주 정읍고에서 토크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후배의 권유로 그는 방송국문을 두드렸다.
10개월만에 ‘비주류’의 대명사였던 함 아나운서는 마침내 2005년 KBS 31기 공채 아나운서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어린 시절 면서기(?)를 바라던 부모님의 꿈을 이루어 드리는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꿈은 준비된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

‘그가 나를 불러주기 전에는 나는 작은 몸짓에 불과하지 않았다‘
그의 KBS 입사에는 절묘한 사연이 담겨져 있다.
그가 원서를 제출하던 해에 입사규정에서 나이제한이 삭제되며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만 주어지는 기회다’

카메라 테스트와 가장 걱정하던 필기시험을 어렵게 통과한 함 아나운서는 심층면접에서 자기의 주특기인 스포츠 중계를 해보라는 면접관의 요구에 ‘일사천리’로 소화해냈다.
엄청난 스펙으로 무장한 경쟁자들을 뒤로하고 그는 ‘꿈에 그리던’ 공영방송 아나운서가 됐다.

모악산의 정기가 서려있는 구이면에서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내던 함 아나운서는 대한민국의 KBS 아나운서의 반열에 올랐다.
함 아나운서는 지인들과 함께 전주에서 낮은 음자리 토크 콘서트를 이끌고 있다.
지난 2009년 10월께 도내 한 라디오방송에서 이번 행사와 취지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단발성으로 끝난 데 아쉬움을 느낀 이들이 지속적인 무료 공연을 펼쳐보자는 취지로 만든 소모임이다.

아직 발굴되지 못한 다이아몬드 같은 아티스트들이 대중적이지만 철학이 있는 공연으로 낮은 자리에서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의미에서 ‘낮은음자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요즘 일요일에 만난사람과 KBS 뉴스광장등 TV와 라디오 9개 프로그램을 넘나들며 ‘비주류의 반란’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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