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이 사는법-모자박사 영진모자 이종태사장>‘모자는 나의 인생…이 박사의 안타까운 절규’
정읍 영진 모자점 이종태 사장…40년 세월 함께 온 모자 장인’

▲ 정읍 영진모자점 이종태 사장은 5공화국 시절 전두환 전대통령의 모자를 특수제작한 장본인이다.
‘장인’ 이종태는 ‘모자박사’다.
모자 장인으로 한국기록원으로부터 인증서를 받았다,
지난 2007년 JTV전주방송에서 주관한 ‘신기록 대발견’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장인으로 선정됐다.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인 이 사장에게는 큰 고민거리가 있다.
전북에서도 유일하게 모자를 만들고 있는 이 사장이 후계자를 만들지 못해 그 맥이 끊길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영진모자 이종태사장은 “학생들이나 경찰 소방관등 명찰과 모자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많은데 내 대에서 맥이 끊길 위기에 있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아쉬워했다.
정읍 영진 모자점 이종태 사장은 5공화국 시절 전두환 전대통령의 모자를 특수제작한 장본인이다.

▲ 올해로 40년 넘게 모자를 만들고 있는 이종태사장이 자신의 작업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전 전대통령에 이어 노태우전대통령의 모자도 청와대 비서실을 요청으로 만든 별난 이력의 소유자다.
‘모자와 함께한 인생’
이 사장이 모자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려운 가정형편상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월사금(?)과 학용품 살돈 없어 자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사장이 청년시절 모자를 만드는 법을 배운 후 처음 가게를 연곳이 고창읍이었다.
나름대로 2년 동안 열심히 했지만 매출이 신통치 않았다.
연애결혼으로 부인 김영옥여사(60)를 만난 이 사장은 새로운 인생항해를 위해 서울로 상경해 '오리엔트‘라는 상호를 가진 모자 공장에 취직해 한차원 높은 모자기술을 습득했다.

타고난 성실함을 가지 이 사장은 모자공장 사장의 눈에 들어 얼마 후에는 공장장으로 승진해 어두웠던 인생에 태양이 뜨는 듯 했다.
이 당시 이 사장은 접이식 모자를 국내 최초로 개발해 캐나다 몬트리올에 대규모 수출을 이끌어 내는 등 탄탄대로의 삶을 살았다.

창업한 회사 도산으로 낙향

‘호사다마’라 했던가?
잘나가던 이 사장은 오리엔트 모자회사가 부도가 나자 자신이 서울 미아리극장 부근에 신진모자공장을 창업했다.
오로지 돈 버는 목적보다 밥을 굶는 직원들을 살리기 위한 무리한 투자였다.
신진 모자공장을 운영하고 있던 어느날 청와대 직원이 공장에 찾아와 전 전대통령의 모자를 특수하게 제작할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일반인에 비해 사이즈가 큰 전 전대통령의 모자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인연으로 이 사장은 노태우전대통령의 모자도 제작해 청와대에 납품했다.
그동안 이 사장은 장인정신이 세상에 알려지며 유수한 언론매체에 다양한 형태로 소개된 스타중의 스타다.
그러나 요즘 현실은 녹녹치 않다.

메이커 모자의 등장과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환경 변화로 매출이 급감해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을 정도로 위기상황이다.
컴퓨터 작업은 작업을 할 수 있는 분야가 매우 제한적이어서 이 사장을 찾는 학생들과 경찰관, 소방관들이 요즘도 즐비하다.
“제가 이 일을 멈추어 버리면 명찰하나 파러 전주와 광주로 가야됩니다. 명찰 뿐아니라 저희 지역에서 써야할 돈들이 유출되는 우려도 높습니다”
솔직히 이 사장은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외아들 호영씨(30) 보다 장차 들어올 며느리가 이 일을 이어 받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지 지역의 관광상품으로 40년 넘은 명찰 모자집에 지자체의 지원이 이뤄질 수 있으면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만…”
말꼬리를 흐리는 이 사장의 눈가에는 많은 회한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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