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식목사 목회칼럼>

▲ 필자인 박종식목사가 전서노회 남선교회연합회 회원들과 함께 캄보디아 현지 교회 헌당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빅터 세리브리아코프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15세 때 선생님으로부터 학교를 다 마치기 어려울 것 같으니 공부를 그만두고 장사를 배우라는 충고를 받았습니다.
그 후 32세가 될 때까지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밑바닥 인생을 살았습니다.

32세가 되던 해 우연한 기회에 자신이 I.Q 161의 천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천재처럼 생각하고 천재처럼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책도 쓰고 특허를 냈으며 성공적인 기업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I.Q 132이하는 회원이 될 수 없는 국제멘사협회 의장이 되었습니다.
빅터가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 데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그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것 다음으로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가정의 소금이나 교회의 소금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소금으로 살아야 합니다.
소금으로 산다는 것은 맛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소금은 음식의 맛이 나게 합니다.

소금을 그냥 먹으면 쓰기도 하고 짠 것이 소금의 맛입니다.
하지만 이 소금을 음식에 적당하게 넣으면 음식의 맛이 나게 합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은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닙니다.
맛을 즐기는 것입니다.
음식의 맛을 내는 소금처럼 세상의 소금은 이 세상을 살맛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은 분위기 메이커, 약방의 감초 등의 '꼭 필요한 존재'의 의미를 포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소금인 그리스도인들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은 살아볼 만한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은 더 이상 살 소망이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죽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2009년 자살자의 수는 15,413명이라고 합니다.
하루에 42명, 34분에 한 사람이 자살하여 죽었습니다.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죽은 사람들의 10배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있고, 무엇인가 기대가 되는 세상이 되도록 만들어가야 합니다.
오늘 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으며 많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반대하는 까닭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그리고 교회가 세상의 소금이 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소금은 웬만해서 맛을 잃는 일이 없습니다.
맛을 잃지 않는 소금, 아니 맛을 내는 소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빛은 어두움을 밝힙니다.
빛은 어두움을 물러가게 합니다.
빛은 모든 것을 드러냅니다. 빛은 모든 것이 드러나게 합니다.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것도 방안의 빛, 가정의 빛이나 교회의 빛이 아닌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빛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 빛이라 함은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말씀처럼 "착한 행실"을 뜻합니다.
착한 행실을 통해서 세상의 빛이 되어서 칙칙하고 어두운 세상을 밝혀야 할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며 교회입니다.

오늘 이 세상에서 빛이 되는 착한 행실은 정직을 꼽을 수 있습니다.
거짓과 부정이 넘치는 이 세상에서 적어도 그리스도인은 정직하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믿을 수 있다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소금과 빛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를 희생한다는 것입니다.
소금은 소금 그대로 있어서는 맛을 내지 못합니다.
녹아서 스며들 때에 비로소 맛을 내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에 빛은 올리브 기름과 심지를 태워서 빛을 발했습니다.
빛을 발하려면 기름이 타야합니다. 심지가 타야합니다.
자기 희생이 없이는 맛도 낼 수 없으며 빛도 발할 수 없습니다.
내가 양보하고, 손해보고, 희생해야 세상의 소금이 되고 세상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는 자기 부인, 자기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소금이 녹아지면서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빛을 발하면서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을 세상에 나팔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소리가 나는 종이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음식이 맛이 있어도 "소금이 맛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장이 맛있다는 소리는 더러 듣지만 소금이 맛있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말 아래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두나니"라는 말씀은 드러난다는 말씀이지만 일부러, 위선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절로 드러날 수밖에 없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맛을 내고, 착한 행실을 하지만 빈수레처럼 요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드러내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너희는 세상의 소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고 하십니다.

왜 말씀대로 살지 않느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알면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알고도 살지 않으면 죄가 됩니다.
나와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세상의 소금이고,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금으로, 빛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있는 그곳에서 소금으로 살아가고 빛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맛을 내어서 살맛이 나게 하고 빛을 비춰서 어둠을 물러가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입니다.
나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입니다.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Mt. 5:13, 14/마태복음 5:13-16)

저작권자 © 새백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