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영광악기사 박석홍대표>‘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섬김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박석홍대표의 나눔과 헌신의 삶 ‘화제’

▲ 피아노 조율의 대가인 박석홍대표가 그의 아내와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 박석홍대표의 양아들인 베트남인 도반농
정읍 영광악기사 박석홍대표(50)는 ‘악기사랑’에 목숨을 건 사람이다.
그는 피아노를 통해 베트남에 진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의 양아들인 도반농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잘나가는 피아노 조율사이자 판매상이다.
그는 40대 중반, 대학에 진학해 플룻을 전공한 ‘만학도’다.
지금도 그는 ‘제2의 양아들’인 두엔반툰를 양육하기 위해 주말이면 자신의 피곤함도 잊은 채 피아노조율을 사사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린다.
오는 단풍철에는 그의 베트남 양아들과 함께 내장산국립공원에 피아노를 협찬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의로운 사람’ 박석홍대표의 살아가는 이야기에는 사람의 향기가 묻어난다.

‘사람 좋은 인상’을 가진 박석홍대표의 보금자리는 정읍동초등학교 정문앞에 둥지를 튼 영광악기사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헌신을 다짐하면서 만들어진 영광악기사로 명명된 듯하다.
그 곳에 가면 희귀한 악기가 즐비하다.
‘천년의 전설’을 간직한 듯한 악기들은 박 대표의 끝없는 사랑을 머금고 있어 빛을 발하고 있다.

▲ 영광악기사 박석홍대표가 선배인 박성규씨(국립공원내장산사무소 근무)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플룻을 연주하고 있다.

그는 헌신하는 사람이다.
베트남 하노이 국립음악대학을 비롯 중앙정부 기관의 내노라는 피아노를 관리하고 있는 양아들 도반농의 반석이 된 생명의 은인이 되고 있다.
박 대표가 도반농을 만난것은 지난 2001년이었다.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을 찾은 도반농에게 피아노 조율을 전수하고 귀국 후 사업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많은 사업 자금도 지원했다.
도반농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악기사를 열어 성공한 사업가로 통하고 있다.

정읍을 비롯 경기도 수원과 전남 영광에 악기사를 운영하고 있는 박 대표는 지금도 일본에서 야마하 피아노를 한 달에 두 컨테이너씩 베트남 하노이로 공수할 정도로 국제적인 지명도가 있는 인물이다.
인터뷰 도중에도 그의 손에는 수출을 위한 다양한 서류가 들려있었다.
내년이면 박 대표의 바램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이루어질 전망이다.
한화 3천여만원을 들여 하노이에 대규모 고아원을 지을 생각이다.
올초 베트남을 방문해 중요한 기획은 모두 마무리 하고 돌아와 늘 설레임을 안고 산다.

평생의 꿈 헌신의 삶

▲ 박석홍대표의 대학 졸업연주회 모습
피아노 조율사인 박 대표는 젊은 시절 영창악기 본사에 근무하며 피아노를 비롯한 악기의 매력에 푹 빠졌다.
자신의 손에 의해 제작된 피아노의 선율이 그의 인생의 ‘칸타타’가 되어주었다.
평생 음악에 묻혀 사는 것이 ‘거위의 꿈’이라고 밝힌 박 대표는
그의 자녀들도 악기의 매력에 빠져있다.
큰딸 주연이는 전북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첼로를 전공하고 있으며 주일이면 교회(정읍중앙교회)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
그의 늦둥이 아들 종훈이도 플롯을 배우고 있다.
박 대표의 ‘닮은꼴’인 종훈이의 연주실력이 나날이 향상되고 있어 큰 기쁨이 되고 있다.

그는 ‘동반자’인 부인 마정례여사(48)의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정읍 장명동 토박이인 박 대표는 지난 2008년 국제신학대학 교수들로 구성된 교향악단을 이끌고 베트남 하노이를 찾아 국립오케스트라와 협연을 이끌 정도로 음악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그의 꿈은 ‘더불어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어떤 형태로든지 ‘작은 겨자씨’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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