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순간의 삶이 행복의 길

>호수의 바닥에 초록 꽃이 피었네!”

>어디를 바라보아도 녹색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물이 그득 담겨 있어야 할 곳에 물은 보이지 않는다. 출렁이는 물 대신 생명의 초록들이 5월의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넘실거리는 호수의 물결에 익숙해져 있던 눈에 초록이 다가오니, 또 다른 풍광으로 보인다.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어 좋았다.

  초록 꽃이 활짝 피어난 옥정호.

전북 임실군과 정읍시에 걸쳐 있는 거대한 다목적 댐이다. 칠보 발전소가 물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옥정호는 섬진강의 상류로서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이 되기도 한 풍광이 아주 수려한 곳이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그리고 가을을 가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의 독특한 멋을 자랑하고 있다.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건강이 삶에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날마다 실감하고 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말의 절박성을 온몸으로 확인하고 있다. 순간순간의 삶이 행복의 전부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좀 더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지 못한 것의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기에 고통이 더욱 더 커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활의 편린.

주말 연휴 동안을 집에서 보내는 심정은 고통스러웠다. 오월의 햇살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었다. 어서 나오라는 유혹의 손짓을 받으면서도 그 것을 뿌리쳐야만 하는 아픔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토요일 하루 내내 방에 갇혀 있게 되니,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 이순의 나이를 향하게 되니, 생각되어지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추억의 편린들은 조각이 나 있지만, 그 나름대로의 명분과 가치를 가지고서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리움에 젖어 살기 마련이라고 하였던가? 각각의 편린들은 저마다 독특한 향기로 다가오는 것이다.

  일요일.

추억의 편린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집에만 있기에는 그 한계를 벗어나 있었다. 집사람을 바라보니, 고개를 옆으로 흔든다. 무리라는 의사표시에 동의할 수 없었다. 드라이브를 통해서 시원한 바람을 받게 된다면 답답한 가슴이 뚫어질 것이란 생각이 앞섰다. 집사람도 별 수 없이 동의하고 따라 나섰다.

  나설 때에는 무거운 분위기였으니, 밖으로 나오니 달라졌다. 오월의 향기를 듬뿍 들이마시게 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생명을 가진 이는 결국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오월이 왜 계절의 여왕인지를 온 몸으로 실감하게 된다. 연록의 세상에서 초록의 세상으로 바꿔지고 있는 시점의 세상은 보석 그 자체였다.

  4 차선 도로가 뚫렸음에도 불구하고 구불구불한 구 도로를 선택하여 달렸다.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오월의 자연을 즐기기 위한 난들이니, 빨릴 달릴 까닭도 없었다. 생활의 짐은 모두 다 내려놓고서 여유를 가지고 구이면(전북 완주군) 2 차선 도로를 느릿느릿 달렸다. 길 가의 풀꽃들을 구경하면서 달렸다.

  구이면 고갯길을 돌아 올라서니, 옥정호였다. 지난 번 비가 내려서 호수의 물이 어느 정도 채워져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 정도의 비로는 호수를 채우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순창으로 나는 새로운 도로와 연결이 되는,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 공사하기에는 아주 좋은 조건이 되어 있었다.

  8각정에서 내려다보는 호수는 초록 꽃으로 활짝 피어나 있었다. 예전에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호수에 물이 차 있었을 때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초록으로 빛나고 있는 곳은 섬이었다. 그런데 섬은 사라지고 남아 있는 작은 물에 작은 보트를 띄어놓고 고기를 잡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한가롭게 보일 수가 없었다.

  멀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배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생활의 여유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자세하게 볼 수는 없지만 마음을 통해서 뭔가 교감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은은한 빛깔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마치 오직 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게 되면 감응이 일어나는 것처럼.

  호수 바닥에 피어난 초록 꽃을 바라보면서 살아온 날들을 반추하게 된다. 생활의 편린들을 하나로 이어가면서 무엇으로 살아왔는지, 생각해본다. 호수에 물이 그득 차 있었을 때에는 모든 것이 다 같게만 보였었다. 그러나 바닥이 드러나게 되니, 그 모습은 모두가 제각각이다. 직선이 아니라 곡선을 이루면서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건강할 때에는 무시하는 것이 참 많았었다. 아니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건강을 잃고 나니, 알게 된다. 생활의 작은 것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친 수많은 것들에 사실은 행복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그 때는 몰랐었다.

  마음을 열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고 한다는 말도 이제는 무슨 뜻인지 안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겸손해지는 것으로부터 시작이 된다. 나를 낮추지 않고는 마음을 열 수 없다. 상대방을 존중해주지 않고는 마음의 문은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지혜도 어리석음도 결국은 나를 낮추고 겸손해지는 것에 달려 있는 것이다.

  호수의 초록 꽃이 말하고 있었다. 마음을 여는 것도 바로 자기 자신에 달려 있고 행복 또한 내 안에 있다는 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순간순간의 작은 편린들이 충실하게 쌓이게 되면 행복의 탑은 저절로 높아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게 되면 행복이란 탑도 영원히 높아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닷물이 썩지 않는 이유는 3 %의 염분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의 행복도 결국은 내 안의 3 %의 고운 마음이 꽃을 피워낼 때 가능해질 수 있다. 원래 가지고 있는 3%의 고운 마음씨의 싹을 틔우지 못하고 꽃을 피워내지 못하게 되면 행복하고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내 안에 있는 행복은 햇빛을 보지 못하고 시들고 마는 것이다.

  바닥이 드러난 호수를 바라보면서 가라앉았던 기분을 되돌릴 수 있었다. 지난 잘못에 잡혀서 오늘을 좌절하게 된다면 내일은 기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바닥이 드러나 호수의 바닥에 녹색의 꽃을 피워낸 것처럼 내 인생에 있어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수 있도록 근신하면서 성실하게 살아야겠다.<春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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