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청사초롱>‘꿈꾸는 자는 바다를 볼 때 파도 너머의 대륙을 본다’
네잎 클로바는 행운이요 세잎 클로버는 행복

▲ 풍성한 추석 한가위는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소중한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다./사진제공 붓쟁이 석산 진성영
최근 국내 자동차회사의 준중형급 광고카피가 눈에 들어온다.
평범한 속의 행복이랄까?
네잎 클로바는 행운이요 세잎 클로버는 행복이라는 말도 떠오른다,
신형 자동차 광고의 내용은 이렇게 시작한다.

‘위대해지지 말 것. 소수의 전유물이 되지 말 것. 최선을 다해, 보통이 되길, 그 단어가 가진 위대함을 모두에게 나눠주길’
각박해져 가는 세상사람들에게 ‘보통’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것 같다.
‘놀라운 걸 만들기보다 놀라운 것을 누구나 누릴 수 있도록’
수퍼 노멀(Super Normal)’로 마무리 되는 대목도 일품이다.

▲ 정종인 주필
지난달 일촉즉발의 남북간 위기감이 해소된 후 둘째아들이 대학 학군단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요즘 청년 취업난으로 인해 학군단 경쟁률도 매우 치열한 모양이다.
생전의 아버님이 원하셨던 ‘소박한 바램’이요 ‘평범한 소원’이어서 고단한 인생여정에 작은 샘물이었다.

여행의 영어단어인 트레블(travel)이 트러블(trouble)을 어원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그럴듯하다.
아들과 모처럼 긴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믿거나 말거나 요즘 아이들과 아버지의 대화시간이 평균 1분도 안된다는 통계를 본적이 있다.
충격적인 일이지만 사실이다.

화제를 바꿔 한국전쟁에 군에 투신해 직업군인으로 사시다 지난 2013년 세상을 떠나신 아버님을 추억하며 아들에게도 몇가지 당부의 말을 이어갔다.
전쟁터에서 한 병사가 치열한 교전 끝에 한쪽 다리를 잃어버렸다.
후방 야전병원으로 이송된 그 병사는 안타까워하는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리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고 그 다리를 조국에 바쳤다네”
학군단 생활을 포함한 군 생활은 물론 앞으로 펼쳐질 항해와 같은 인생 속에서 남을 먼저 생각하고 약자를 위한 진정한 배려와 사랑을 실천하는 아들이 되어 달라고도 당부했다.

“작은 잎사귀의 떨림에서 우주를 보고 안간힘을 쓰는 개미의 행진에서 삶의 경건함을 배워야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선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꿈꾸는 자는 바다를 볼 때 파도 너머의 대륙을 보지만 작은 사람은 바다의 파도만을 본단다.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한다.”
밤이 깊어가자 더욱 청아해지는 풀벌레 소리를 배경음악삼아 아들에게 시 한편을 들려줬다.

징기스 칸의 ‘사막의 노래’라는 시였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였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 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 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 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빰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 버렸다.
나는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징기스 칸’이 되었다.’

세상에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있고 꼭 있어야 하는 사람이 있다.
조금 느리게
조금 작게
조금 낮게
조금 뒤에서

힘겹게 세상을 살아가는 친구들을 위해 어깨를 잠시 내어주는 배려도 있는 아들이어서 좋다.
오늘도 작은 풀잎의 몸짓에서 영원한 진리를 느끼는 소중한 시간을 살아가길 기도한다. 사랑하는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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