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식목사 목회칼럼>‘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정읍중앙교회 박종식목사
빚을 지고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사실은 빚을 지고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규모 있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찌 할 수 없이 빚을 지게 되는 일들이 살아가노라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할 때에 할 수 있으면 그 빚을 갚으며 살아야 하는 것이 사람된 도리일 것입니다.


우리는 국가적, 민족적으로 진 빚이 있습니다.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수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피를 흘렸습니다.
그 배후에는 정치적인 이유, 국가의 경제적인 유익을 위한 이유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젊은이들이 흘린 피에 대해서 우리는 분명히 빚을 진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무작정 매도(罵倒)해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분들이 아직 생존해 계시기도 합니다. 최근에 그분들을 교회가 초청해서 위로해 드린 일이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분들에게 진 빚에 대해서 우리는 그 나라에 그리고 그 후손들에게라도 이제는 빚을 갚아야 합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가 갚을 수 있는 형편이 되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빚을 지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국가적, 민족적, 그리고 교회적으로 진 빚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교사님들에 대한 빚입니다. 선교사님들을 파송했던 교회와 나라에 대해서 우리는 빚 진 자들입니다.
지난 해 우리교회 청년들이 영국 버밍엄에 있는 래디플교회에 비전트립을 다녀왔습니다. 100여 년 전 영국은 우리나라에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였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비전트립을 마치고 돌아온 후 우리교회는 래디플교회를 위해서 헌금을 하였고 거의 500만원을 송금하였습니다.
우리교회의 헌금에 대해서 래디플교회가 많이 놀랐습니다.
그리고 많이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받은 은혜를 비교해 보면 지극히 작은 것에 불과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1866년 9월 2일 평양의 대동강변에서 한 젊은 선교사님이 순교하였습니다.
그분은 토마스 (Robert Jermain Thomas)선교사님입니다.
그때 그분의 나이는 불과 27세였습니다. 미국의 상선이었던 제네럴셔먼호가 우리나라에 오게 되었을 때, 영국에서 파송되었던 토마스 선교사님이 통역으로 함께 동행하였던 것입니다.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제너럴셔먼호는 조선의 관군에 의해서 불타게 되었고 토마스 선교사님은 대동강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곧 조선 관군에게 사로잡힌 토마스 선교사님은 참수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목이 잘려 죽는 그 순간에 토마스 선교사님은 자기를 처형하는 이에게 가슴에 품고 있던 성경책을 전해주었습니다.

그 성경을 받아든 이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으며 후에 평양의 장대현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토마스 선교사님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토마스 선교사님은 순교하기 전 마지막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아주 잔인하고 사악한 대학살이 최근 조선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누군가 조선에 들어가 선교의 문을 여는 것의 중요함을 깨달아 제가 조선에 들어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1866. 8. 1)

이 토마스 선교사님이 래디플교회가 속해 있는 회중교회의 목사님이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수많은 선교사님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에 불과합니다.

얼마나 많은 생명과 얼마나 많은 피가 이 땅과 이 나라와 민족과 한국교회를 위해서 희생되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복음의 빚진 자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빚을 갚아야 합니다.

주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8)
우리가 거저 받은 것을 이제는 거저 주어야 할 것입니다.
빚지고 살지 말 것입니다.
 

"I am obligated both to Greek and non-Greek, both to the wise and the foolish."(Rom. 1:14/로마서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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