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상칼럼>서원으로 살아가야

   “가을에 등이라니, 색다른 느낌이다.”

  다양한 색깔의 등들이 입구에서부터 나란히 걸려 있다. 색깔이 일정한 규칙성을 유지하고 있다. 등을 단 사람의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다. 걸려 있는 등은 사천왕문을 지나 대웅전 앞에 이르니,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 모습이 어찌나 보기에 좋은지, 감탄사가 나온다. 그 것도 색깔별로 줄을 지어 있어 더욱 더 돋보였다.

  도솔산 선운사.

  대한 조계종 제 24 교구 본사로서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절이다.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에 위치하고 있다. 백제 시대에 검단 선사가 창건한 절로서 많은 보물과 아름다운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산사이다. 특히 도적들을 교화하여 소금을 구우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검단 선사의 이야기는 아주 유명하다.

  산사를 그득 메우고 있는 가을의 등은 조금 낯설었다. 그러나 왠지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아름답다는 생각이 앞서게 된다. 등의 본질은 어둠을 밝히는데 있다. 그러나 환한 대낮이니, 등이 할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힘은 무엇일까? 그 힘의 근원을 분명하게 알 수는 없지만, 마음이 끌리는 것은 분명하였다.

  산사의 가을에 등이 걸린 이유는 산사 음악회 때문이었다. 행사를 빛나게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등을 선택하였고 입구에서부터 보기 좋게 걸어 놓은 것이었다. 9월 19 일부터 20 일까지 선운사에서 주최하는 산사 음악회는 올해로써 두 번째라고 하였다. 전시회 등을 비롯하여 세미나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아름답게 다가오는 가을 산사의 등을 바라보면서 끌림을 생각하였다. 살아가면서 끌림은 아주 중요한 동기 요인이 된다. 끌림이 있기에 역동적인 활기를 유지할 수 있고 신바람을 일으키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만약 끌림이 없다면 삶은 그야말로 무기력해진다. 끌림으로 인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

  끌림은 느낌이다. 느낌은 분명하지는 않지만 왠지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상징적인 힘이다. 끌림은 불확실한 현실에 적응하기 위한 방어 수단이며 안전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이다. 느낌은 막연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본능적인 감정이나 정서 그리고 생명 에너지가 통합된 바탕 위에서 가지게 되는 추론적 힘이다. 느낌은 어느 순간의 스치는 생각이 아니다.

  끌림은 본능적인 힘을 바탕으로 그동안의 경험을 통 동원하여 불확실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시스템적인 힘이다. 그 바탕에는 되는 충동이나 희노애락애오욕과 같은 감정들의 총화가 있다. 단지 그 것은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순간의 생각 또는 직관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갑자기 나타나는 새로운 힘이 아니다.

  끌림에는 이유가 있을 수 없다. 그냥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길 뿐이다. 그 것이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불필요하지만 소유하고 싶은 욕심을 가지게 하는 것이 바로 끌림이다. 가을 산사의 등을 보고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도 바로 이런 끌림 현상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끌림이 있기에 우리의 삶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

  가을 산사의 등을 바라보면서 끌림의 소중함을 인식한다. 끌림이 아름답지만 욕심으로만 그 영역이 확장된다면 사람은 추해지기 쉽다. 끌림이 욕심으로 방향을 잡지 않고 활기찬 삶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욕심은 서원으로 바꾸면 된다. 추구하는 일이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게 되면 욕심이고 만인을 위하게 되면 서원이 된다.

  가을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등을 바라보면서 끌림을 생각해본다. 살아오면서 욕심에 너무 치우쳐 있었던 나를 본다. 그래서 걸어온 길이 가시밭길이 된 것은 아닐까? 질서를 유지하면서 흔들리고 있는 등을 바라보면서 앞으로라도 욕심이 아닌 서원으로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가을 색깔로 물들여지고 있는 산사에서 나를 심도 있게 바라보았다.<春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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