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근 컬럼> ‘가르치는 것은 두 번 배우는 것’

▲ 문경근주필
며칠 전, 퇴임 후 처음으로 학생들 앞에서 다시 수업할 기회가 있었습니다.퇴직 교원단체인‘정읍교육삼락회’에서 실시하는 청소년 인성교육 프로그램의 강사 자격으로 학생들에게 인성 관련 수업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 수업을 한지 실로 십여 년 만의 교단 수업인지라 마치 새내기 교사처럼 기대와 설렘이 교차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수업은 마음먹은 대로 진행될까?’

환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의 박수와 환성 속에 교단에 올라섰습니다.
오랜 동안의 수업 경험을 무기로 도입 단계의 분위기는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첫 단추는 제 자리에 꿴 셈입니다.
낯선 선생님에 대한 호기심과 준비한 예화가 한몫 했었나 봅니다.

그러나 약발이 그리 오래가지 못했는지, 아이들의 집중력이 조금씩 이완되며 수업 리듬도 멈칫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간간히 던져지는 질문에도 예상했던 답변과 엉뚱한 반응이 혼재되어 나타났습니다.
예전에 비해 아이들의 수준과 기대치는 달라진 반면 내 수업 기술이나 준비 자료는 녹슨 검처럼 무디기만 했습니다.

수업도 살아있는 생물 같은 거라 하는데, 그 주체인 아이들이 교사의 의도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줄 리가 없습니다.
이런저런 반응들이 나타나는 것은 아이들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며, 그들은 서로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라는 극히 초보적인 인식을 하마터면 외면할 뻔했습니다.

이럴 때 꺼내들어야 할 것이 바로 나만의 경험이 아니던가?
나는 서둘러 목소리를 낮추고 눈높이를 맞추며 아이들의 입장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으로서의 권위와 아이들에 대한 존중이 균형을 이루도록 신경을 썼습니다.
교단을 내려온 후 일시정지 상태였던 수업의 노하우를 순발력 있게 끄집어낸 덕분에 다행히 아이들의 박수 속에 수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반생을 보냈으니, 수업에는 어느 정도 전문가라는 자부심을 갖고 나섰는데, 그날 나는 수업처럼 어려운 것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해야만 했습니다. 또한 선생님의 고충과 책무를 다시 떠올리며,‘가르치는 것은 두 번 배우는 것’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숲 속의 나무들이 서로 다른 모양이나 색깔로 조화를 이루듯이, 교실 안의 아이들도 다양한 모습으로 반응하게 마련입니다.모든 아이들이 같은 모습을 하며, 한 줄로 따라온다면 선생님의 역할은 단순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렇듯 서로 다르니까 아이들입니다.

문제는 다양한 아이들을 다독거리며 어느 누구 한 사람 포기함이 없이 목적지까지 안내해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 전문가를 우리는 선생님이라 부르며 감사하고 존경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요즘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육에 대한 입장과 방법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습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교육과 학교에 대한 기대를 결코 놓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교육이 희망이라면 학교는 그 희망의 제작소이며, 그 중심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가르쳐 이끌어주는 선생님의 책무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스승은 가르치는 일을 넘어 이끌어주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합니다.
아이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주는 일이 가르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선생님의 길은 때로는 외롭고 고달픕니다.
그러나 먼 훗날 어른이 되어 당당하게 서있을 제자들을 생각하면, 절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사람이 선생님입니다.

올 교육주간의 주제처럼, 선생님은‘행복한 학교 따뜻한 교실’을 위해 쉼 없이 군불을 지피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자신의 가슴 속에 아이들의 내일을 품고, 그들이 기다리는 교실로 묵묵히 향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힘내세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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