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꼭 고향의 장독대 같다.”

  옹기가 정겹다.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장독대가 생각난다. 맛있는 김치를 담그기 위해선 고추를 잘 갈아야 한다. 지금이야 스위치만 올리면 자동으로 갈아주지만 그 때에는 모든 것을 손으로 하였다. 돌로 만들어진 믹서였다. 전라도 사투리로 ‘학독’이라고 부르던 석물이 고향을 그리워하게 한다.

  군산시 나포면에 위치하고 있는 음식점에서 조우한 정경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주인의 마음 또한 고향을 생각하며 정성을 들여 만들었을 것이란 짐작을 쉽게 할 수 있다. 식 당 안에 만들어져 있는 종이 인형도 아름다웠던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한복을 입고 얌전하게 절하고 있는 모습에는 시집 간 누님 얼굴이 배어 있었다.

  고향.

  세월 따라 고향도 많이 변하였다. 마음이 울적하여 고향을 찾게 되면 눈이 동그래진다. 추억 속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낯선 풍광에 놀라게 된다. 그 예전의 정겨웠던 풍광은 없다. 하늘은 예전 그대로이지만 눈에 생생한 어린 시절의 오밀조밀한 광경들은 하나도 없다. 고향은 고향에 있지 않았다. 오직 마음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제행무상이라 하였던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 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지혜다. 그러나 달라진 고향에 놀랄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달라진 고향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 스스로는 달라졌어도 고향만큼은 제 모습을 지키고 있기를 바라고 있다. 욕심이다.

  그 것은 아마도 생각의 원형이 고향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살아온 방식의 기준이 고향이었다. 생각의 기준은 원형으로 굳혀 있었다. 어린 시절에 익힌 습관들이 고착되어 있다. 고정된 생각의 틀은 굳어버렸다.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게 되면 새로운 방안을 강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온 방식을 무의식적으로 지키고 있다.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옹기들을 바라보면서 굳어 있는 생각의 원형을 생각하게 된다. 원형은 생활의 기준이 된다. 원형을 바꾸지 않으면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없다. 태도를 바꿀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일관된 행동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액자효과’라고 한다. 자연 단조로운 일상에 젖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의 원형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고향은 아름답다. 그러나 고향에 붙잡혀서 다른 방식으로 생활에 접근할 수 없다면 활기 넘치는 삶을 유지하기 어렵다. 새로운 세상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그 언저리에서만 서성거릴 뿐이다.

  옹기의 투박함에서 고향을 생각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 것이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걸림돌이 된다면 문제다. 위험이 있더라도 그 것을 감수하며 생각의 원형을 부셔야 한다. 생각의 틀을 무너뜨리지 않고는 새로운 세상에 들어서기란 어렵다. 고향의 세상은 마음에 간직하면서도 새로운 세상의 경이로움을 누려야 한다.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생각의 원형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열정으로 사랑해야 한다. 같은 상황이라도 다른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위험도 극복해야 한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살아가게 되면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설 수 있고 환희를 맛볼 수 있다. 어머니의 사랑이 숨 쉬는 옹기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春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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