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창간 특별프로젝트/푸른정읍의제21공동기획>동진강탐사르뽀

<프롤로그>

강은 생명이며 어머니입니다.

인간이 생명의 터전을 일구어 내는데 근본이 되며 농경문화를 발전시키는데 촉매제 역할을 해냈습니다. 

 전라북도의 대표적인 강이 만경강과 동진강입니다. 동진강과 만경강은 새만금 수질문제와 맟물려 있으며 만경강은 전주지역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활발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반면 동진강은 관심이 부족한 현실입니다. 

 특히 정읍에서 발원하여 서해로 흐르는 호남평야의 젖줄, 동진강에 대해 푸른정읍의제21추진협의회에서는 올 한해동안 ‘동진강프로젝트’라는 다소 거창한(?) 계획을 세워 동진강의 발원지, 역사, 문화, 생태환경 등의 탐사와 조사활동을 통해 동진강과 관련한 다양한 컨텐츠 개발, 동진강 탐사전략을 수립해,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길을 확인하기 위한 장정에 돌입했습니다. 

 이에앞서 지난 5월 28일 이정현 전북환경연합 이정현 정책국장을 강사로 초빙하여 ‘땅과 생명, 만경강은 흐른다’라는 주제로 기획강좌를 실시했으며, 6월 5일에는 박 훈 전북의제 사무국장과 함께 ‘만경강 사례를 본 동진강의 접근전략’ 이란 주제로 기획강좌를 마련한 바 있습니다. 

 이후 지난 6월 27일 마침내 동진강탐사의 첫발을 내 디뎠습니다. 

이에 밝은신문을 통해 동진강의 생생한 탐사현장과 동진강과 관련된 역사, 문화, 생태환경 등에 대해 연재합니다.

 다만, 이번 연재물은 강, 하천, 생태환경과 그닥 상관없는 비전문가인 정읍에 사는 평범한 시민의 시각으로 작성한 글이다 보니 서투른 문장이나 사실과 다는 내용이 있을 수 있음에 다소 우려스러움이 따르기도 합니다만, 너그럽게 양해 바라며 사실과 다른 내용에 대해서는 정확히 지적해 주시고, 동진강 탐사와 관련해서도 좋은 의견들을 주시면 탐사에 적극 반영토록 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1. ‘동진강탐사대 모이다’

 2차례의 동진강 탐사와 관련한 강좌를 통해 탐사의 밑천을 마련한 후 드디어 탐사의 첫 일정을 잡았다.

2009년 6월 27일 오전 9시 휴대폰이 정신없이 울린다.

정읍의제21의 강건양 간사의 다급한 음성이 귀에 따갑게 들린다. 후다닥 현수막을 챙겨들고 시청앞으로 향했다. 열명가량의 어른과 세명의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몇분의 탐사대원은 첫 대면이라 좀 쑥스럽기도 하다.

탐사 시작전 이번 탐사의 안내 및 해설을 맡아 주실 박래철 선생의 소개와 함께 5만분의 1지도 3개를 붙인 지도를 펼친 후, 탐사에 대한 대략의 브리핑을 마친 후 탐사에는 기록이 가장 중요하다며 기록1에 오승옥씨(필자), 기록2에 전 정읍의제21 간사였던 김명하씨(정읍지역자활센터), 사진기록에는 강건양 정읍의제21 간사가 임명되었다. 그 바람에 필자가 탐사를 연재하는 영예(?)를 얻었다.

 

▲ 이번 탐사의 해설을 맡은 박래철씨가 지도를 펼친후 탐사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먼저, 역사적인 동진강탐사에 함께 했던 탐사대원의 면면을 살펴보자.

 탐사의 전반적인 해설과 안내를 맡아주신 박래철씨(정읍중학교 교사), 정읍의제21 운영위원장이며 이번 동진강프로젝트에 공동기획을 맡아 줄 정종인씨(밝은신문 편집국장), 탐사를 총괄하는 정읍의제21 사무국장 한혁준씨(정읍전주 한살림), 곽상주씨(문화를사랑하는정읍사람들), 의제21 사회복지분과 총무 김복례씨(정읍지역자활센터 실장), 의제21 송종문 자연생태문과위원장(신세계상사), 이도형씨(정읍지역자활센터 센터장), 최영진씨(아름다운 사진), 사진을 담당할 강건양씨(정읍의제21 간사), 김효소씨(한살림 이사), 탐사의 연재기사를 쓸 오승옥씨(인쇄나라집현전), 기록을 담당할 김명하씨(정읍지역자활센터)

강의 탐사는 발원지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동진강의 발원지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들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 박래철 선생의 글을 옮겨본다.

 “호남평야를 적시는 동진강의 발원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과거에는 물길이 가장 긴 내장산 까치샘을 발원지로 인정하였지만, 일제강점기 섬진강의 상류를 막아 이루어진 운암호가 만들어지면서 상황은 바뀐 것이다. 옥정호에서 인공적으로 공급되는 풍부한 수량을 감안한다면 이제는 정읍천 대신 태인천 쪽을 발원지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태인천 중에서도 또 이견이 많긴 하다. 상두천이 형성되는 산외면 상두천 아래라 주장하기도 하고 산외면 팽나무정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널리 인정되는 곳은 산외면 목욕리 깃대봉 아래라고 한다”

 동진강의 발원지에 대해 전라일보는 3월18일자 특집기사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발원지가 문제였다. 많은 강들이 그렇듯 동진강 또한 명확한 발원지가 '없다'. 아니 분명하게 있기는 한데 딱히 여기가 발원지라고 할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이다.

 우선 공식적인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 자료를 보자. 올해 2월 국토해양부 한강홍수통제소가 발간한 <<한국하천일람-2007.12.31>>에 따르면 동진강은 전북 정읍시 내장동 내장산의 까치봉(717m) 북쪽 계곡(정읍천 상류)에서 발원해용호천, 정읍천, 고부천, 원평천 등을 끌어 모아 서해로 흐르는 강으로 공식적인 길이는 51.3km이며 유역면적 1124.14㎢에 달하는 우리나라 10대 하천 중의 하나라고 소개돼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국가의 공식적인 기록에도 불구하고 동진강의 발원은 여전히 아리송한 상태로 남아 있다.

같은 국토해양부 홈페이지에 소개돼 있는 하천관리지리정보시스템(www.river.go.kr)에 하천정보-하천명 유래 페이지를 보면 동진강에 대해 전라북도 남부에서 서쪽 중앙부로 흐르는 강. 정읍시 산외면의 산간에서 시작하여 정읍, 부안, 김제 등을 지나 황해로 흘러든다. 섬진강의 유역 변경식 댐으로 강물을 받아들여 만경강과 함께 한국 제1의 곡창지인 호남평야의 농업용수로 이용된다고 설명 되어 있다. 같은 국가기관의 설명조차 발원에 대한 기록이 서로 다르니 일반인들의 혼선이야 오죽하겠는가.

그에 앞서 일각에서는 정읍시 산외면 팽나무정 마을 남쪽 계곡에 일제시대 뚫어놓은 운암호 취수터널에서 쏟아진 물줄기를 현대적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조선시대 기록인 증보문헌비고 산천조에 따르면 동진강은 정읍 내장산에서 발원해 정읍천으로 흘러 이평 평야에 이르고 태인천은 상두산에서 발원한다고 기록돼 있다.“

발원지와 관련된 얘기들은 일단 여기까지하고 다시 탐사대로 돌아가자.

오늘의 탐사구간은 내장저수지부터 시작해 정읍천을 지나 만석보를 거쳐 동진대교, 문포에 이르는 50km 정도의 거리. 정확히 따지면 50km가 조금 안될 듯 싶다. 이번 탐사는 하모교에서 정읍교사이의 거리를 도보답사하는 걸 제외하면 대부분의 코스는 차량으로 이동하게 된다.

 9시30분 드디어 출발이다.

두 대의 승합차에 나눠 탄 탐사대 일행이 맨 먼저 달린 곳은 저 정읍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내장산 까치샘에 근접한 내장저수지.

1955년 착공하여 1964년 준공된 내장저수지는 정읍천의 근원이며 농업용수와 한때 정읍시민의 식수원으로 사용되었다. 내장호수축조기적비에 새겨있는 사업개요를 살펴보자. 제당연장 433m, 높이 17.3m, 유역면적 2,300ha, 만수면적 79.1ha, 총 저수량 4,914천㎥, 유효저수량 4,423천㎥, 수혜면적678ha이다.

 

1955년 착공하여 1964년 준공된 내장저수지는 정읍천의 근원이며 농업용수와 한때 정읍시민의 식수원으로 사용되었다.

 

이곳 내장저수지에 박정희 전대통령의 흔적이 아직까지 존재한다는 설명에 일행의 시선은 ‘국립공원내장산’이라고 써있는 석비로 향했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쓴 글이라는 것이다. 안내를 맡은 박래철 선생이 비석아래 새겨진 글을 읽었다.

1971년 내장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직후인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이 이곳 정읍 내장산을 방문하였는데, 그 뒤 1976년 '내장산국립공원'이라는 글씨(휘호라고 함)를 보내주었고 이를 당시 전라북도지사가 기념비석에 새겨 넣었다는 것이다.

비문은 1976. 5. 1 전라북도지사 ○○○로 끝나고 있다.

전직대통령으로서 남긴 적지 않은 유산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호불호(好不好), 찬반양론, 명(明과) 암(暗), 공과가 분분하기에 그리 썩 달갑지만 않은 기분이 드는 건 나만의 괜한 시비일까?

내장호에서 바라본 초여름 내장산의 경치가 정감있게 다가왔다.
지리를 전공한 박래철 선생의 내장산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내장산의 조성시기는 대체로 중생대(6천5백만년전 이전) 시기에 해당하며, 응회암으로 이뤄진 지질학적 특성으로 인해 계곡의 수량이 부족하다고 한다.

이번 탐사의 출발지점인 내장저수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탐사대원들
 

 

 첫 출발지인 내장호에서 기념촬영을 한후 탐사대는 벚꽃길을 따라 상동에 있는 어린이 교통공원 부근의 헌수탑에 잠시 정차했다. 이곳에도 역시 박정희 전대통령의 유산(?)이 건재하다.

 헌수탑에는 지금의 우회도로 개설과 관련된 내용이 새겨져 있다.

 

 ‘헌수탑(獻樹塔) 하단의 글’

 “이 내장로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 1973.11.22 내장산에 오셨을 때 정주읍 우회도로를 관광도로로 개설하라는 분부로 총연장 5,361m(폭 12m)를 4억 5천 7백만원을 투자하여 개설케 되었으며, 왕벚꽃 가로수와 화단 내 상록수림은 각하의 하사금과 재경인사, 이 고장 독지가들의 헌수금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1975. 11. 20 정읍군수 ○○○”

 

 이 역시 박래철 선생의 소상한 설명과 함께 무심코 걸었던 우회도로의 아름다운 벚꽃길의 조성경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박정희대통령을 가까운 곳에서 수행했던 황인성 전라북도지사가 남긴 회고록중 정읍내장사 방문과 관련된 이야기는 박래철 선생의 개인 블러그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어린이교통공원 인근에 있는 헌수탑에는 우회도로 개설과 관련된 내용이 새겨져 있다.

 

 

 이동하는 내내 차안에서도 역시 박래철 선생의 마을의 지명부터 하천설명 등 정읍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을 쏟아냈다.

정읍 I.C앞에 도로명 표지가 ‘삼보들’을 ‘산보들’로 잘못 기재되어 있다는 웃지못할 얘기에서부터 금붕동의 유래가 금북(검듸)과 붕래(버줄)의 합성어로 이뤄진 지명이며, 금북과 검듸는 거문고를 닮은 산의 뒷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등 우리 지역의 소지명에 대한 풍수지리적 설명과 함께 조곡천의 유래며, 말고개와 몰고개 등 기록을 맡은 필자가 수첩에 적기 버거울 정도로 많은 얘깃거리를 들려 주었다. 

 말 그대로 박선생은 ‘살아 움직이는 지역문화 백과사전’이 아닌가 싶다.  <2편으로 이어짐>

 

  • 글/ 오승옥
  • 사진/ 강건양
  • 기록/ 김명하
  • 탐사해설/ 박래철
  • 탐사기획/ 푸른정읍의제(추)&밝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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