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환의 소통하는 우리 역사1-우리나라 최초의 아고라, 발로 찾아 쓴 동학농민혁명 이야기>

◆ 얘기 하나

청소년 여러분!
‘역사’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지요. ‘재미없다’, ‘어렵다’, ‘졸립다’, ‘외울 것이 너무 많다‘ 등 그저 시험만 아니면 거들떠보고 싶지 않은 과목이 ’역사‘란 것 잘 알고 있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이 ’역사‘란 놈과 친해질 수 있을까요?

학교에서 아이들이 가끔(그것도 아주 드물게) '어떻게 하면 국사공부를 잘 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해 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난 󰡒보고 또 봐봐'라고 싱겁게 대답한답니다. 그런데 대답은 싱겁지만 사실 ‘역사’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사랑 법은 자주 보는 것 밖에 없습니다.
물론 사람이든 역사든 간에 먼저 예뻐야 사랑스런 마음도 생기고 그래서 관심도 더 가고 또 자주 보고도 싶어지겠지요? 그런데 첫 눈에 밉게 생긴 사람도 자주 만나게 되면 보는 눈이 무뎌지게 되고 그때는 처음엔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아름다운 면도 보이게 되고 처음 밉게 봤던 외모도 또 다른 매력으로 느껴지게 되는데 이것이 사랑의 출발이지요.

내가 어렸을 때 일입니다. 그때는 모두가 어려울 때라 여느 부모님들처럼 우리 부모님께서도 교과서 외의 청소년 잡지나 소설책 같은 것은 사줄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그래서 난 책을 읽고 싶을 때는 병원 하던 앞집 친구 집에 자주 놀러갔었습니다.(그 집에는 당시 유행하던 ‘어깨동무’나 ‘새소년’같은 잡지를 구독하고 있었음)
어느 날 그 친구와 싸우고 그 집에 한 동안 가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평소 그 친구가 부럽기도 하고 내 책도 한 권 가지고 싶어 부모님께 몇날 며칠을 철없이 졸라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책은커녕 오히려 심한 꾸중만 들었지요. 울다 잠이 든 내가 안쓰러워 보였던지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내 머리맡에 책이 한 권 놓여있었는데 얼마나 기뻤던지...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그런 책과는 거리가 멀었답니다. 지금 정확한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우리 역사를 빛낸 100명의 위인들’ 정도로 내용은 아동용 국사대사전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컴퓨터나 TV가 있어 볼거리와 놀 거리가 풍부하지 않았던 시절이기에 심심하거나 부모님께서 공부하라고 하실 때마다 읽을거리는 그것뿐이어서 읽고 또 읽었답니다. 그러다 중학교에 입학하여 국사시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들이 모두 이미 내가 그 책에서 읽은 것들이지 뭡니까?
때때로 선생님께서 질문을 하시면 그 질문에 대한 자신감도 생기고 또 잘난 척도 하고 싶어 질문한 내용 이상으로 답변을 하자 그때부터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에 다른 것은 몰라도 국사만은 잘하는 아이로 인정받게 되었답니다. 결국 그것이 오늘날 내가 국사교사가 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학교현장에서 느낀 점인데 아이들은 민족혼이 담겨있는 역사보다도 시험과목 중 하나인 역사를 원합니다. 똑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푸는 입시 위주의 공부를 저항 없이 해온 순종형의 아이들, 한 번도 자신의 머리로 그것이 왜 옳고 그른지 조목조목 따져보고 비판해본 적이 없는 우리 아이들, 이런 아이들을 보고 있을 때마다 나는 심한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런 현상의 근본 원인이 우리의 잘못된 입시교육제도로부터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그 탓만 하고 있기엔 나란 존재 자체가 너무 무력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속에서 무엇인가 내가 할 일이 있지 않은가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천성이 게으르고 미욱한 탓에 생각만 저 멀리 앞서가고 몸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 얘기 둘

옛 사람들은 말을 참으로 재미있게 합니다. 평상시 무심코 써왔던 말이지만 상황을 떠올리면 아! 하고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쏜살같다’는 말이지요. 활시위를 떠난 화살을 상상해본다면 지나간 세월에 대한 아쉬움을 이보다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정읍에 살면서 동학농민혁명 관련 유적지를 안내해 준지 어언 십수 년이 지났습니다. 그야말로 '쏜살'같은 세월이 흘렀고 앞으로도 또 그렇게 흘러갈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안내랍시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많이 했지만 오히려 배운 것이 더 많았던 순간들이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순례를 하는 층을 살펴보면 동학농민혁명 발발 백주년이 되는 1994년 이전엔 주로 농민단체나 대학생 및 재야운동 하는 사람들이 주가 되었습니다. 아마 시대적인 상황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그 이후부터는 일반 답사 객들이 급증하기 시작해서 요즈음엔 가족이나 초․중․고등학생 등 청소년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추세입니다.

난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안내를 할 때마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쉽게 읽힐 수 있는 동학농민혁명 안내 책자가 하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안내하면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났는데 이구동성으로 인연이 닿지 않아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특히 아이들이나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는 유적지 안내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듣고도 여러모로 부족하여 미루고 미뤄 오다가 이번에 책을 펴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책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이야기만 담아놓은 것은 아닙니다. 공자 말씀을 담은 '논어(論語)' 이인편(里仁篇)에 보면 일이관지(一以貫之 -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일을 꿰뚫음)란 말이 있습니다. 난 이 책을 읽는 여러분들이 동학농민혁명이란 역사적 사건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로 보고 또 어떻게 사는 삶이 정말 잘 사는 삶일까 생각하기를 기대합니다.
나는 그간 학교현장에서 중학생들을 가르치는 역사교사로서 아이들과 함께 느낀 점들을 편하게 정리했습니다. 때론 열변을 토하기도 하고 때론 함께 안타까워하기도 했던 우리 이야기를 담아봤습니다.

그간 아이들 스스로가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주체라는 의식을 가지고 그 속에서 ‘의롭게 사는 삶이 가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고 내면화시킬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르쳐왔습니다. 물론 그것은 내 아들과 딸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지요.
사실 교과서 속에 죽어있는 역사가 아니라 내 삶 속에서 계승하고 실천하는 역사가 되도록 하려면 나부터 움직여야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1985년 정읍 학교에 부임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이 고장의 역사부터 가르쳐야 되겠다 싶어 향토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며 직접 현장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먼지 매캐한 시골길을 덜덜거리는 버스로 또 때론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돌아다녔습니다.

그 속에서 난 동학농민혁명이란 엄청난 역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마 운명적인 만남이었나 봅니다. 그 만남을 통해 동학농민혁명이 우리 역사 속에서 불의에 저항하는 역사, 민중의 자각에 의한 자주적이며 역동적인 큰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나 지역사회 속에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내 안에 절실하게 다가왔으며 그 속에서 작게나마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분들과 함께 사단법인 갑오농민혁명계승사업회를 조직하여 고부봉기 역사맞이굿, 무명농민군위령탑 건립, 학술대회 개최, 동학농민군 영솔장 최경선 묘역정비 사업, 동학농민군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 등 많은 일들을 해왔고 그 결실도 맛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일들이었지만 하나하나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은 뜻을 같이 한 동료들 덕분이었고 이 책의 발간도 그 산물이었습니다.
나는 청소년 여러분들이 이 책을 안내서 삼아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를 돌아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또 그 때 내가 느꼈던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가슴에 담아가길 바랍니다.
부족한 나에게 때로는 애정 어린 질책으로 또 때론 분에 넘치는 칭찬으로 격려를 해주신 동료 여러분들께 이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맘 전합니다. 그리고 함께 늙어가고 싶습니다.

저자 소개

조광환(曺光煥)

1958년 전라북도 부안 출생
부안초등학교, 삼남중학교, 부안고등학교 졸업
원광대학교 사범대 국사교육학과 동 대학원 졸업
석사논문으로「전봉준의 생애연구」가 있으며,
공저「내고장 역사의 숨결을 찾아서」를 발간
현재 학산여자중학교 교사, 사단법인 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이사장


‘새야 새야 파랑새야’ 동학농민혁명의 발자취를 기록한 조광환이사장(사단법인 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소통하는 우리 역사- 우리나라 최초의 아고라, 발로 찾아 쓴 동학농민혁명 이야기'를 저자의 기고로 연재를 시작한다.
연재를 통해 역사인식과 소통의 세상을 기대한다.<편집자 주>

추천사

'교실 밖에서 들려주는 진솔한 역사 이야기'

우리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전봉준 장군과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노래에 얽힌 사연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정의로운 삶도 그려져 있다. 지은이는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줄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이 되새겨 보아야 할 점도 분명히 짚어 주고 있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생각을 담아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흔히 지겨운 암기과목이라 여기는 역사가 어떻게 우리 삶의 거울이 되고, 이정표가 될 수 있는지 자신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며,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그리고 교과서 속에 갇혀 있는 역사적 사실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그림과 글, 사진과 지도를 엮어 살아 꿈틀대는 인간의 모습으로 창조해낸다.
지은이는 지금보다 100년도 더 전에 벌어진 일을 독자들이 실감나게 느끼게끔 하는 이야기 솜씨를 펼쳐 보인다.

이 책의 또 다른 힘은 바로 발로 뛰며 찾아내고 소중하게 지켜낸 우리 역사라는 점이다.
지은이는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유적지를 일일이 확인하고, 관련된 기록과 이야기를 살피고, 자신의 철학과 역사관을 담은 답사를 이끌었다. 20년 가까이 답사를 진행하고, 유적지를 안내하면서 쌓인 지은이의 설명 솜씨와 친절함,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애정이 이 책 곳곳에 서려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은이가 마냥 답사 안내자로서 글을 쓴 것은 아니다. 현직 역사교사로서 우리 역사를 가르치며, 청소년들과 호흡하고, 그들이 무엇을 궁금해 하고, 무엇을 더 필요로 하는지 깊이 고민한 결과를 책으로 펴낸 것이다.

자칫 향토사학자들이 자기 고장의 역사만 부풀려서, 자기 흥에 겨워 말하기 쉬운데, 지은이는 한국사 전체의 흐름 속에서 동학농민혁명이 갖는 의미와 교훈을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교실의 제한된 수업시간과 공간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한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이야기를 크게 한보따리 풀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를 바로 알면, 오늘날을 제대로 알게 되고, 오늘의 밝은 눈으로 미래세상을 활짝 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는 그냥 사실을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를 알더라도 그 속에 담긴 뜻, 오늘날에 비추어 보아야 할 의미를 살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름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판단을 갖추어 나갈 때, 우리는 역사의식이 생겼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우리 청소년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추기를 소망한다. 이 책의 끝 무렵에 나오는 현재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동학농민혁명이 옛날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넌지시 들려주는 장치이다. 모쪼록 지은이의 속뜻을 우리 청소년들이 잘 헤아려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 역사의 당당한 주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글 윤종배 (“어린이 살아있는 한국사교과서” 저자, 서울 온곡중 역사교사)

저작권자 © 새백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